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황경숙 시인 / 그린란드 보고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31.

황경숙 시인 / 그린란드 보고서

 

 

  입술이 떨어져 발등에 툭,

 

  태양이 끝나는 곳 얼어붙은 땅에서

  숨겨둔 자식의 이름

  스노우 스노우

 

  말하는 동물의 언어 뜨겁지 못해 차가운 피

  굳게 닫혔던 응고된 말들을 꺼내려고

  불안한 발음으로 당신을 부른다

 

  날카로운 따뜻함으로 웃음을 베면

  흰빛으로 가득했던 심연은 흐르고 흘러

  눈을 가리는 흑야

  당신에게서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때

  그 고백은 단지 미래의 크레바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그때 본 별은 지워진 얼굴처럼 흘러내린다

 

  아주 높고 깊은 곳까지

  돌이킬 수 없는 기대 할 수 없는 반전의 반전

  하얀 묵시록의 절대공간

  당신의 모든 것은 날씨에 맡겨야 하리*

 

  당신 심장이 세상 끝으로 투둑,

 

* 그린란드 속담

 

시집 『그린란드 보고서』(2013, 지혜) 중에서

 

 


 

 

황경숙 시인 / 카르멘의 노래

 

 

내 춤과 말(言)은 아직 기록된 적이 없어

 

집시의 치맛자락에서 뛰쳐나와 집시의 노래만 듣고 자랐지 아직 내 발길 닿지 않은 곳은 너무나 많아

 

네가 아는 최초의 집시여인이라 불러줘

푸른 멍 속에 갇혀 있는 바람아,

비릿한 슬픔을 꺼내줘

 

모래바람의 진원지에서부터 나는 걷기 시작했어 맨발로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사막을 건넜지 말라붙은 목, 아버지 해소기침처럼 우는 겨울산을 넘어 대륙을 횡단했지 녹아버린 무릎과 귀, 쓰러지진 않아 넓은 바다를 만나면 소리칠 수 있었지 왜 이렇게 땅은 좁은 거야 보이지 않는 엄마, 지느러미 같은 치맛자락으로 양수 속을 헤엄쳤지

 

귀를 닫고 잠을 부르면

바람 부는 골목과 바다 한 자락을 칭칭 감아 안고 도는

그 아이의 노래 소리가 들려

 

내게 남은 바람은 어디 있을까 어디에도 없는 나를 찾아 걷고 또 걸었던 바람의 도착지,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노래할 거야 머물지 못하고 떠도는 아픈 바람의 음표로

 

저곳은 내가 나에게로 가는 나만의 집의 시(詩)인지도 몰라  

어느 곳에서든 두 개의 해는 뜨고 질 테니

 

시집 『그린란드 보고서』(2013, 지혜) 중에서

 

 


 

황경숙 시인

전남 여수에서 출생. 2009년 《애지》 겨울호에 무드셀라 증후군 외 4편의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그린란드 보고서』(2013, 지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