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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진화 시인 / 피의 공전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31.

최진화 시인 / 피의 공전

 

 

손가락이 베인 어느 날, 뚝뚝 흐르는 피가

통증보다 빨리 뱉어 내는 소리들

내 속에 숨어 있던 어제의 소리들

은하계 너머 여독도 풀지 못한 채 성큼 날아든다.

 

얼어붙은 강이 쪼개지던 봄날의 소리

대륙을 건너오던 햇빛과 바람 소리

끝없는 초원을 구르던 말발굽 소리

하얗게 새벽을 밝히던 먹 가는 소리

검은 머리카락에 묻어나던 달빛 소리

천길 절벽으로 흩날리던 옷자락 소리

사흘 밤낮 설산을 뒤덮던 함박눈, 눈, 눈 소리.

 

영겁의 소리들이 모여 이룬 내 피여,

오늘도 증명하지 못한 하루를 적셔

이 고고한 아우성 살며시 동여맨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0월호 발표

 

 


 

최진화 시인

경기도 동두천에서 출생. 2005년 계간 《문학나무》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푸른 사과의 시절』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