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화 시인 / 피의 공전
손가락이 베인 어느 날, 뚝뚝 흐르는 피가 통증보다 빨리 뱉어 내는 소리들 내 속에 숨어 있던 어제의 소리들 은하계 너머 여독도 풀지 못한 채 성큼 날아든다.
얼어붙은 강이 쪼개지던 봄날의 소리 대륙을 건너오던 햇빛과 바람 소리 끝없는 초원을 구르던 말발굽 소리 하얗게 새벽을 밝히던 먹 가는 소리 검은 머리카락에 묻어나던 달빛 소리 천길 절벽으로 흩날리던 옷자락 소리 사흘 밤낮 설산을 뒤덮던 함박눈, 눈, 눈 소리.
영겁의 소리들이 모여 이룬 내 피여, 오늘도 증명하지 못한 하루를 적셔 이 고고한 아우성 살며시 동여맨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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