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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헌 시인 / 후박나무에 관한 기억
사당동 예술인 마을 언덕빼기 오르다보면 허리 구부정한 노거수가 되어 늙은 시인의 머리맡을 지키는 후박나무 한 그루 있네 인적 끊긴 대문간에 서서 얼마나 많은 잎과 꽃들이 그의 생을 빛내 주었는지, 후박나무 넓은 이파리 그 커다란 손바닥이 봄비 내리듯 다독이면 하늘 흰 구름은 내려와 이따금씩 시의 꽃이 되고 무성한 가지에 포롱포롱 새가 날아와 은종소리를 내기도 하네
한때의 기억을 칼질하듯 햇빛이 잘게잘게 부서지면 후박나무는 제 몸을 열어 마른 땅에 은유 한 톨을 심네
저 후박나무의 시간은 지금 몇 시일까
월간 『현대시』 1999년 11월호 발표
김지헌 시인 / 달팽이
몸으로 세상을 밀고 가는 저것!
연초록 비로드 봄비 속을 라마승처럼 달팽이 한 마리 꾸물꾸물 기어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처럼 힘껏 이 세계를 떠메고 가는 달팽이 한 마리 봄 들판 비에 젖어 제 몸으로 길을 내고 있다
오! 저 빛나는 생의 오체투지
시집 『황금빛 가창오리떼』(문학과경계사, 200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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