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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허영숙 시인 / 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2.

허영숙 시인 / 섬

ㅡ누군가 잃어버린 퍼즐 조각들

 

 

바다에 풀린 달이 하얀 길을 낸다, 그 길을 따라

물이 온다

갯벌에 발목만 담그고 있던 바다의 밑그림들이 술렁거린다

오늘은 달도 만조가 되는 날

포구의 밤풍경이 비로소 다 맞추어지기까지 보름이 걸렸다

 

다시 물이 온다 얼마나 많은 섬을 훑고 돌아다녔는지 철벅철벅 오는 걸음이 느리고 무겁다

 

오래전 너는 내게 맞물렸던 한 조각, 폭풍우 같은 시절이 지날 때 너는 훌훌 뭍을 떠나 섬이 되어 숨었다 섬과 섬을 기웃거리며 다녀도 보일 듯 말 듯 한 하얀 종아리, 수많은 섬들 중에 익숙한 네 무릎도 볼 줄 모르는 나는 너를 이해하는데만 반생이 걸렸다

 

너는 거기서 나는 여기서 조금씩 낡아간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찾았을 때는 헐렁해진 거리를 힘들어 할지도 모르는 일

 

시간을 뒤엎어 다시 끼워 맞추면

그때는 네가 보일까, 텅 빈 해안선

둥글게 굽은 옆구리에

억지로 제 몸을 들이미는 달빛,

 

계간 『시안』 2011년 가을호 발표

 

 


 

 

허영숙 시인 / 49일

 

 

돌아가신 할머니가 꿈에 다녀갔다. 깃털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와서

잠시 나를 들여다보고

마당의 맨드라미 씨앗을 한 줌 받아 환하고 눈부신 길목을 돌아갔다 그날 밤,

숙모의 꿈에도 다녀갔다고 했다

 

평생 쌀물 일던 아침을 놓지 못해 칠일

서늘하게 혼자 늙어 갈 빈집에서

산꿩 울음만 듣고 풋감은 저 혼자 어떻게 익나 하고 다시 칠일

한 목숨 다 저문 후에도

사람들이 부르는 당신의 이름에 귀 기울이며

딱 그 이름만큼으로 울고 그 이름으로

일곱 날을 다시 일곱 번을 살다가

먼 바깥으로 맨드라미 씨앗을 쥐고 걸어갔다

 

비로소 완전히 가신 거라며

숙모는 밥도 먹지 않으며 울었고 나는,

버드나무가 있는 물가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피안에 들기 전에 머문다는

 

마흔아홉 날

 

그곳의 입구가 어디쯤인지 남은 사람들은 끝내 알지 못하고

숙모도 다시 수저를 들 것 이지만

하늘 저 어디쯤을 열면 맨드라미 까만 씨앗이 쏟아질까

나는 ,

버드나무 가지를 힘껏 당겨보았다  

 

49재 : 칠칠재(7.7,七七齋)라고도 불리는 사십구재는 사후 49일 만에 치르는 제사의례

 

계간 『시산맥』 2011년 봄호 발표

 

 


 

허영숙 시인

1965년 경북 포항에서 출생. 부산여자대학 졸업. 2006년 《시안》으로 등단. 현재 〈시마을〉동인으로 활동 中. 시집으로  『바코드』(문학의전당, 2010)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