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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영춘 시인 / 별 우체국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2.

이영춘 시인 / 별 우체국

 

 

  너무 멀리 갔다

  발자국이 지워진 너의 길

  지상의 풀벌레도 어느 새 길을 잃고

  밤새 목청 터지도록 너에게로 가는 길을 묻는다

 

  계절을 끌고 가는 저 허공의 길

  허공을 채우는 별 잎사귀들이

  점점이 붉은 방점으로 너를 깨우는데

  별 우체국,

  너는 어느 유목민의 자손인가

  아득히 소식이 멀다

 

  그 먼 나라에 잠들었을 너에게

  나는 수신인 없는 편지를 쓴다

  어느 별 우주 정거장에서 붉은 귀 세우고 있을까

  별들이 소리 없이 우는 밤,

  그 울음소리에 귀 묻고 앉아 눈 먼 편지를 쓴다

  밥알처럼 한 스푼씩 떠 음미할 눈물을 쓴다

 

  지상에는 네가 사랑하던 너의 꽃잎들 소식은 멀고

  네가 등 기대고 눕던 붉은 탯줄도

  너를 따라 그 나라에 든 지 오래다

  지상은 텅 빈 정거장

  붉은 꽃잎들 뚝뚝 떨어진 빈 집 뿐이다

  네 혈흔처럼, 발자국처럼

  나는 오늘 밤 아득한 그 나라에

  별 우표를 붙인다

 

계간 『시인수첩』 2017년 겨울호 발표

 

 


 

 

이영춘 시인 / 음각되는 오후

 

 

 

  내 이름이 어딘가로 달아난 오후

  판화처럼 돌올된 이름들을 양각한다

  어느 유명 시인은 특강 한 번에 1백만원 2백만원 받는다고

  목에 힘줄을 세우고

  내 시는 고작 제로 아니면 5만원, 3만원,

  층층 벽으로 높아 가는 공간에서

  낮달 같은 회색 이름, 제 그림자 지우며 간다

 

  물병자리 깊은 곳, 어느 별의 꼬리이거나

  물고기의 아가미이거나

  깃털 수염 같은 가을 햇살 촉 하나

  오후의 반사경 속으로 빠르게 건너간다

  안개 강 건너간다

 

  건너는 골짜기마다 “와디의 바람”, “잃어버린 나의 모모”, 화인으로 화농된 불의 시간들

  마야로 가는 아트만, 아트만,

  사막을 건너간다

  바람을 건너간다

  굴절된 오후가 건너간다

 

“ ”은 본인(이영춘)의 작품명.

 

연간 『문학마당』 2017년 vol.21호 발표

 

 


 

 

이영춘 시인 / 핫팩의 시간

 

 

  머리카락이 뽑힌다

  뽑힌 머리카락이 나를 응시한다

  생각이 도망간 생각의 집,

  창밖 새들의 목소리 가늘어진다

  천장에 매달린 전구가 머리카락을 당긴다

  형광등 혼자 둥그렇게 웃고 있는 방,

  고요 속에 폭포 같은 물소리

  시간을 밀고 간다

  무중력의 바퀴가

  침대 모서리를 끌고 하늘로 올라간다

  텅 빈 허공에 침대 하나 둥둥 떠 있는 오후

 

계간 『열린 시학』 2017년 겨울호 발표

 

 


 

이영춘 시인

197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시시포스의 돌』, 『귀 하나만 열어 놓고』, 『네 살던 날의 흔적』, 『슬픈 도시락』』, 『시간의 옆구리』, 『봉평 장날』, 『노자의 무덤을 가다』, 『신들의 발자국을 따라』와 시선집『들풀』『오줌발,별꽃무늬』 등이 있음. 윤동주문학상. 고산문학대상. 인산문학상. 강원도문화상. 동곡문화예술상. 한국여성문학상. 유심작품상 특별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