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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왕노 시인 / 검은 죄의 이파리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2.

김왕노 시인 / 검은 죄의 이파리

 

 

1

 

그 때 우리는 아무 것도 몰랐다. 떠돌이처럼 마을언저리로 세상으로 떠돌며 꽃을 꺾어도 뱀을 작대기로 후려패고 남의 집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 달아나도 누군가의 엉덩이를 슬쩍 만지거나 치마를 살짝 걷어 올렸다가 달아나도 깔깔거리기만 했을 뿐 죄인지 몰랐다.

 

2

 

그 때 우리는 우리의 손을 순수의 손이라고 불렀다. 냇물에 씻으면 깨끗해진다고 믿었다. 죄에 물든 손이라는 것을 몰랐다. 우리는 늘 죄에 허기져 있었고 가난으로 인해 세상의 무엇을 슬쩍해도 죄가 아니라 바로 가난이라고 했다. 나는 이미 감정적 전과자였다. 누가 지은 죄에 단죄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기도로 내 죄 사함을 위해 눈물 흘리기도 했다. 그것이 또 죄를 짓기 위한 전 과정이었는지 몰랐다. 참회로 맑은 내 얼굴을 보고 사람들은 모범생이라고만 불렀다. 생 울타리 곁에 숨어 오줌 누는 순이를 훔쳐보고 피마자 밭에서 자위를 했다. 순이를 수없이 부르며 마음으로 간음하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변성기에 숨겨진 내 슬픈 성장을 아무도 몰랐다. 변성기 속에서 이루어진 내 2 차적 성장을 아무도 몰랐다. 솔밭이 된 거웃으로 성에 눈 뜬 소년으로 목책에 기대어 풀을 뜯는 소를 보며 음탕한 노래를 부르는지 아무도 몰랐다. 친구와 서서 오줌발을 멀리 보내며 여자 따먹었다는 동네 형의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내어 짓씹으며 우리는 자랐다. 포도가 익어가는 한여름 밤에는 솔밭 모래 언덕에서 윤간의 소문이 삘기 꽃처럼 하얗게 피어나 바람에 나부꼈다. 내 친구는 한 아이를 범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들려주었다. 죄의식도 없이 침을 꼴깍 삼키며 그 이야기에 흠뻑 젖어 몽정의 새벽까지 흘러가기도 했다.

 

그 때 죄가 유일한 우리의 위안이었다.

악이 서슬 시퍼렇게 우리를 측백나무 숲처럼 둘러싸고 무성할 때

우리가 저지르는 죄는 새발의 피 같은 것이라 여겨 죄의식이 없었다.

죄에 굶주린 짐승처럼 어금니만 날카롭게 빛났다.

 

어른들은 자식을 먹여 살린다고 바빠 우리가 저지르는 죄를 몰랐다. 우리를 불러 세워 회초리로 피가 나도록 종아리를 때리지 못했다. 우리도 어릴 때는 저렇게 했지 하며 오히려 우리의 동조자가 되 주었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와 의 심리적 동일화를 원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가해인지 피해인지도 모르면서 자랐다. 죄에 물든 얼굴로 자랐다. 죄 속에서 잔뼈가 굵었다. 세상은 한 탕으로 출세하는 곳으로 알았다. 저질러놓고 보면 모든 것이 내 목록에서 빛날 것이라 했다. 여전히 여자는 따먹는 과일처럼 생각하는 형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랐다. 누가 누구를 따먹었다는 이야기에 비난보다는 찬사와 부러움에 찬 눈길을 보냈다. 우리의 생각이 점점 죄의 온상이 되어가는 줄 몰랐다.

 

누가 죄는 즐거운 유희라고 모래밭에 깊게 새기기도 했다.

죄로 단정한 옷을 입고 거리에 나가 여자를 유혹하리라며 옷을 다리기도 했다.

죄가 멋있게 보이는 계절이라고 했다.

지구는 죄의 별

죄는 우리가 간직한 가장 고결한 숨결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은 죄의 파라다이스, 죄의 다다이즘, 죄의 아방가르드

끝없이 죄의 결속으로 이뤄져가는 연대들

끈끈한 죄의 점액질, 액체로 된 죄, 연고로 된 죄, 알약이나 환으로 된 죄

 

나는 죄의 소읍을 떠나 죄의 도시로 입성했다. 하찮다고 여겼던 내 죄는 여전히 이 도시에서도 하찮을 뿐이라 생각했다. 돌이킬 수 없는 죄인데도 죄가 아닌 곳이고 모든 것은 죄와 코드가 맞춰져 있고 죄는 극히 작은 꿈의 소모품과 같아 수없이 죄를 갈아 끼우면서 점진적으로 내 꿈이 이뤄지리라는 생각이 가로수처럼 우우 물결치는 곳이다. 북방여치 같은 얼굴로 때로는 아무르장지 뱀 같은 얼굴로 모여 늘어놓는 이야기는 죄의 강물을 이뤄 흘러갔다. 죄의 반만년 역사 속에서 우리는 죄로 거둔 성과를 말할 때 우리 얼굴이 빛난다는 이상한 논리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교육이란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배우는 것 이라는 착각에 빠진 얼굴을 우리는 자주 지나치는 것이다.

 

3

 

나는 이제 완전 죄의 중독자이다. 하나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친구를 사회적 약자라고 동조하는 것은 이제 나의 과오라고 생각한다. 내 죄의 이야기가 가상의 이야기일지 몰라도 우린 너무 죄의 계절 깊숙한 곳에 와 있다. 나는 죄의 검은 이파리를 뚝뚝 떨어뜨리면서 시드는 나무 한 그루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언제인가부터 찾아왔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3월호 발표

 

 


 

 

김왕노 시인 / 다한증

 

 

손바닥은 내 운명이 새겨진 예언서 한 권, 손금이란 집요하게 내 운명을 예언하고 나의 운명을 끌고 모래 언덕을 넘거나 물가로 가거나 이것이다 믿는 것은 악력을 다해 움켜 쥘 것이다. 하나 주먹을 꽉 움켜쥔다는 것은 잠시 예언서를 접는 다는 것, 예언보다는 접은 예언의 모서리나 예언서가 만든 정권으로 감정으로 때로는 이성적 판단으로 불의를 못 참는 정의의 주먹이든 폭력을 행세하든 주먹이든 무언가 해보려는 의도, 아니면 예언서를 접어 만든 불끈 쥔 주먹으로 결의를 다지는 것, 하나 내 예언서는 늘 젖어있다. 상습침수지역에 있듯이 내 손으로 뿌리칠 수 없는 다한증으로 젖어있다. 예언서에 감정을 가지던지 미신의 문장으로 점철된 예언서라든지 찬사이든 비난을 하던 나의 손바닥은 쉽게 젖는다. 말랐다 해도 어느새 손바닥 안엔 비구름이 몰려드는지 장마전선이 북상했는지 저지대라 물이 많은지 습지인지 젖어있다. 배수로를 따로 낼 수도 없고 제습기를 가동할 수 없는 다한증의 내 손바닥, 나의 예언서 오늘도 젖어있다. 수성의 나무를 심고 물별이 뜨고 가시고기의 노래 수포로 떠올라야 할 젖은 내 손바닥, 나의 안구가 말라갈수록 더 자주 젖는 내 손바닥, 눈가에 눈물이 사라진 날 더 젖는 손바닥

 

나의 누선이 손으로 이어진 오래된 내력을 내 몸이면서 나는 잘 몰랐다 .

오늘도 내 손바닥으로 흘러오는 눈물

만지는 것마다 지문이 아니라 눈물이 축축하게 남는다 .

나는 이제 내 존재란 눈물로 젖은 손으로만 증명될 뿐이다

 

계간 『문예연구』 2017년 겨울호 발표

 

 


 

 

김왕노 시인 / 너를 꽃이라 부르고 열흘을 울었다

 

 

  비 추적추적 내리는 날 화무십일홍이란 말 앞에서 울었다.

  너를 그 무엇이라 부르면 그 무엇이 된다기에

  너를 꽃이라 불렀으니 십장생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중에 학이거나 사슴으로 불러야 했는데

  나 화무십일홍이란 말을 몰라 너를 꽃이라 불렀기에 울었다.

  나 십장생을 몰라 목소리를 가다듬었으나 꽃이라 불렀기에 울었다.

  단명의 꽃으로 불렀기에 내 단명할 사랑을 예감해 울었다.

  사랑이라면 가볍더라도 구름 정도로 오래 흘러가야 하는데

  세상에나 겨우 십일이라니 십일 동안 꽃일 너를 사랑해야 한다니

  그 십일을 위해 너를 꽃이라 불렀기에 너는 내게 와 꽃이 되다니

  꽃에 취하다 보니 꽃그늘을 보지 못했다니 너를 꽃이라 부르고

  핏빛 꽃잎 같은 입술로 울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에메랄드 진주 비취 사파이어 마노

  자수정, 남옥, 사금석, 혈석, 카넬리안, 공작석, 오팔, 장미석

  루비도 있는데 너를 때 되면 시드는 꽃이라 부르고 울었다.

  지는 꽃보다 더 흐느끼고 이별의 사람보다 더 깊고 길게 울었다.

 

월간 『현대시학』 2016년 7월호 발표

 

 


 

 

김왕노 시인 / 뱀의 전설

 

 

  나는 서울로 압송하는 전봉준을 꽁꽁 묶었던 오랏줄

  일획의 참회하는 뼈저린 글이다 .

  한 때의 과오로 평생 슬슬 기면서

  기를 펴지 못하는 길로 꿈틀거리며 왔을 뿐이다 .

  전봉준이 서울로 압송되어 갈 때 봉준아 , 봉준아 하면서

  산천도 울고 녹두 꽃 뚝뚝 지고 청포장수 울었다는데

  나는 피가 안 통할정도로 전봉준을 꽁꽁 묶었던 끄나풀

  내 긴 몸으로 내 긴 몸을 사정없이 내려치고 싶구나 .

  고부나 삼례쯤에서 자학으로 짓이겨지고 싶구나 .

  가도 가도 끊어지지 않고 닳지도 않고 허물 벗을 때마다

  다시 빛나는 몸으로 살아나는 내 죄의 문양과 죄의 독니

  스스로 삼킨 독으로 대역죄인인 나를 벌할 수만 있다면

  세상에 대한 미련도 후회도 없이 삼킬 독

  하나 나의 몸은 길지만 운명은 생각보다 너무 짧다 .

 

계간 『문예연구』 2017년 겨울호 발표

 

  


 

김왕노 시인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꿈의 체인점〉으로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슬픔도 진화한다』(천년의시작, 2002),『말 달리자 아버지』(천년의시작, 2006), 『그리운 파란만장』(천년의시작, 2015),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천년의시작, 2016), 『복사꽃 아래로 가는 천년』(천년의시작, 2019) 등이 있음. 2003년 제8회 한국해양문학대상, 2006년 제7회 박인환문학상, 2008년 제3회 지리산문학상, 2016년 제2회 디카시 작품상과 같은 해 수원문학대상, 2017년 한성기 문학상, 2018년 제 11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상, 2019년 시작문학상과 같은 해 풀꽃문학상 등 수상.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문학창작금 등 5 회 수혜. 시인축구단 글발 단장, 현대시학회장 역임. 현재 『시와 경계』 주간, 수원문학 주간, 한국디카시 상임이사, 한국시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