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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명길 시인 / 삼백 살이나 나이 먹은 사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8.

최명길 시인 / 삼백 살이나 나이 먹은 사내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은

  과르네리 델 제수를 데리고 산다.

  나이가 자그만치 삼백 살

  과르네리 델 제수는 힘꼴이나 쓰는 사내라

  깊고 어둡고 강렬하다.

  사라 장은 이 사내와 열일곱 살에 만나 동거중인데

  과르네리는 쓸 만한 게 백은 되나

  거의 박물관으로 가버렸고

  사라 장이 이 사내와 브람스나 시벨리우스를 타면

  심오한 영혼을 끌어내 파동친다.

  어디서 그런 울림이 나오냐고 물으면

  과르네리가 나이 삼백이라 세월이 흘러 들어가

  저절로 그런 음색이 튀어 나온단다.

  도대체 한 번도 연주경연에 나선 적 없으나

  거장 로스트 로포비치와 협연할 정도이니

  사라 장도 거장이긴 거장이지

  이런 거장 손아귀에 걸려들었다면야

  아무리 사나이 중 사나이인 과르네리라 한들

  맥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하자는대로 할 수밖에

  하기사 나이가 삼백쯤이면 우주의 소리가

  스스로 찾아와 깃들릴 법도 할 것

 

격월간 『유심』2009년 5~6월호 발표

 

 


 

 

최명길 시인 / 노을 안나푸르나

 

 

  어떤 현묘한 정신의

  울퉁불퉁한 뼈다귀,

  그 뼈다귀가 붉게 탄다.

  지금 말은 필요 없다.

  고요한 응시면 된다.

 

  내 영혼은 그 만년 정수리에 홀려

  무간지옥으로 내려갔다 갑자기 맑아지면서

  켜켜이 쌓인 껍질이 나가떨어졌다.

  다만 산과 나

  나와 산이다.

  산과 한 몸으로 엉켰다.

  그리고는 빨려 들어갔다.

  애인의 달짝한 입속으로 혓바닥이 빨려 들어가듯

  차고도 예리한 흰빛 붉음 속으로

 

  내 온몸이 휘말려들며

  그렇게 우주는

 

월간 『현대시학』 2005년 11월호 발표

 

 


 

최명길 시인

1940년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 1959년 강릉사범학교 졸업. 1989년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1975년 《현대문학》에 시 〈자연서경〉, 〈해역에 서서〉, 〈음악〉 등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화접사』, 『풀피리 하나만으로』, 『반만 울리는 피리』, 『은자, 물을 건너다』, 『콧구멍 없는 소』, 『하늘 불탱』과 명상시집 『바람속의 작은 집』이 있음. 홍조근정훈장, 강원도문화상<문학부문>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