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하운 시인 / 향수
내 고향 함흥은 수수밭 익는 마을 누나가 시집갈 때 가마타고 그 길로 갔다 내 고향 함흥은 능금이 빨간 마을 누나가 수줍어할 때 수수밭은 익어갔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 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 나는 문둥이 새끼올시다 그러나 정말은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꽃과 나비가 해와 별을 속인 사랑이 목숨이 된 것이올시다
세상은 이 목숨을 서러워서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부릅니다.
호적도 없이 되씹고 되씹어도 알 수는 없어 성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도 될 수는 없어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성한 사람이올시다.
한하운 시인 / 여인
눈여겨 낯익은 듯한 여인 하나 어깨 넓직한 사나이와 함께 나란히 아가를 거느리고 내 앞을 무심히 지나간다.
아무리 보아도 나이가 스무살 남짓한 저 여인은 뒷모습 걸음걸이 하며 몸맵시 틀림없는 저... 누구라 할까...
어쩌면 엷은 혀 끝에 맴도는 이름이요! 어쩌면 아슬아슬 눈 감길 듯 떠오르는 추억이요! 옛날엔 아무렇게나 행복해 버렸나 보지? 아니 아니 정말로 이제금 행복해 버렸나 보지?
한하운 시인 / 무지개
무지개가 섰다. 무지개가 섰다.
물 젖은 하늘에 거센 햇살의 프리즘 광선 굴절로 천연은 태고의 영광 그대로 영롱한 七彩의 극광으로 하늘과 하늘에 穹 한 다리가 놓여졌다.
무지개는 이윽고 사라졌다 아쉽게 인간의 영혼의 그리움이 행복을 손모아 하늘에 비는 아쉬움처럼 사라진다 서서히.....
만사는 무지개가 섰다 사라지듯이 아름다운 공허였었다.
한하운 시인 / 삶
지나가 버린 것은 모두가 다 아름다왔다.
여기 있는 것 남은 것은 욕(辱)이다 벌이다 문둥이다.
옛날에 서서 우러러 보던 하늘은 아직도 푸르기만 하가마는.
아 꽃과 같은 삶과 꽃필 수 없는 삶과의 갈등(葛藤) 사잇길에 쩔룩거리며 섰다.
잠깐이라도 이 낯선 집 추녀 밑에 서서 우는 것은 욕이다 벌이다 문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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