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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변영로 시인 / 봄비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30.

변영로 시인 / 봄비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아려…ㅁ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나!

아, 찔림없는 아픈 나의 가슴 !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노래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노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신생활>(1922)-

 

 


 

변영로 [卞榮魯, 1897.5.9 ~ 1961.3.14] 시인

1898년 서울에서 출생. 아호는 수주(樹州). 시인이며 수필가와 ·영문학자로 활동. 시집으로 『조선의 마음』,『수주 시문선』, 영시집『진달래 동산』이 있음. 이화여전·성균관대 교, 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 초대 회장, 동아일보 기자·대한공론사 이사장 등을 역임. 서울시 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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