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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윤동주 시인 / 병원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30.

윤동주 시인 / 병원(病院)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病院)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女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日光浴)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女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못해 처음으로 이 곳을 찾아 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病)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病)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試鍊), 이 지나친 피로(疲勞), 나는 성내서는 안된다.


여자(女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花壇)에서 금잔화(金盞花) 한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病室)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女子)의 건강(健康)이―아니 내 건강(健康)도 속(速)히 회복(回復)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윤동주 [尹東柱, 1917.12.30 ~ 1945.2.16] 시인

北間島(븍간도)의 명동촌서 출생. 아명은 해환(海換). 1936년 광명학원을 거쳐 1941년 연희전문 문과 졸업. 일본 릿쿄대학과 도시샤대학에서 수학. 1943년 귀향 직전 항일운동 혐의로 일경에 검거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에서 옥사.  작품으로 『서시』,『자화상』,『별 헤는 밤』,『또다른 고향』, 『쉽게 쓰여진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등이 있고,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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