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명 시인 / 가을의 構圖
가을은 깨끗한 새악시처럼 맑은 표정을 하는가 하면 또 외로운 여인네같이 슬픈 몸짓을지녔습니다 바람이 수수밭 사이로 우수수 소리를 치며 설레고 지나는 밤엔 들국화가 달 아래 유난히 희어 보이고 건너 마을 옷 다듬는 소리에 차가움을 머금었습니다 친구여! 잠깐 우리가 멀리 합시다 호수 같은 생각에 혼자 가마안히 잠겨 보구 싶구려.....
산호림, 자가본, 1938
노천명 시인 / 가을날
겹옷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산산한 기운을 머금고...... 드높아진 하늘은 비로 쓴 듯이 깨끗한 맑고도 고요한 아침---
예저기 흩어져 촉촉이 젖은 낙엽을 소리 없이 밟으며 허리띠 같은 길을 내놓고 풀밭에 들어 거닐어 보다
끊일락 다시 이어지는 벌레 소리 애연히 넘어가는 마디마디엔 제철의 아픔을 깃들였다
곱게 물든 단풍 한잎 따 들고 이슬에 젖은 치맛자락 휩싸 쥐며 돌아서니 머언데 기차 소리가 맑다
노천명 시인 / 감사
저 푸른 하늘과 태양을 볼 수 있고
대기(大氣)를 마시며 내가 자유롭게 산보할 수 있는 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이것만으로 나는 신에게 감사할 수 있다.
창변, 매일신보사, 1945
노천명 시인 / 거지가 부러워
온 방안 사람들이 거지를 부럽단다. 나두 거지가 부러워졌다. 빌어 먹으면 어떻냐 ? 自由 ! 自由만 있다면
저 햇볕아래 깡통을 들고도 저들은 자유로울 것이 아니냐 ? 네가 무었을 원하느냐 묻는다면 나는 첫째도 自由. 둘째도 自由. 셋째도 自由라 하겠다.
노천명 시인 / 고독
변변치 못한 화를 받던날 어린애처럼 울고 나서 고독을 사랑하는 버릇을 지었습니다.
번잡이 이처럼 싱크러울때 고독은 단 하나의 친구라 할까요.
그는 고요한 사색의 호숫가로 나를 데리고 가 내 이지러진 얼굴을 비추어 줍니다.
고독은 오히려 사랑스러운 것 함부로 권할 수 없는 것 아무나 가까이 하기 어려운 것인가봐요.
산호림, 자가본,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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