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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심훈 시인 / 만가(輓歌)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5.

심훈 시인 / 만가(輓歌)

 

 

궂은 비 줄줄이 내리는 황혼의 거리를

우리들은 동지의 관을 메고 나간다.

수의(壽衣)도 명정(銘旌)도 세우지 못하고

수의조차 못 입힌 시체를 어깨에 얹고

엊그제 떠메어 내오던 옥문(獄門)을 지나

철벅철벅 말 없이 무학재를 넘는다.

 

비는 퍼붓듯 쏟아지고 날은 더욱 저물어

가등(街燈)은 귀화(鬼火)같이 껌벅이는데

동지들은 옷을 벗어 관 위에 덮는다.

평생을 헐벗던 알몸이 추울상 싶어

얇다란 널조각에 비가 새들지나 않을까 하여

단거리 옷을 벗어 겹겹이 덮어 준다.

 

(* 이하 6행 삭제 - 총독부 검열 과정에서 삭제 )

 

동지들은 여전히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인채 저벅저벅 걸어간다.

친척도 애인도 따르는 이 없어도

저승길까지 지긋지긋 미행이 붙어서

조가(弔歌)도 부르지 못하는 산 송장들은

관을 메고 철벅철벅 무학재를 넘는다.

 

<< *총독부 검열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보이는 6행을 끝내 복원시키지 못하고 심훈은 1936년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심훈 시인 / 밤

 

 

밤, 깊은 밤 바람이 뒤설레며

문풍지가 운다.

방, 텅 비인 방안에는

등잔불의 기름 조는 소리뿐.......

 

쥐가 천장을 모조리 써는데

어둠은 아직도 창 밖을 지키고

내 마음은 무거운 근심에 짓눌려

깊이 모를 연못 속에서 자맥질한다.

 

아아, 기나긴 겨울 밤에

가늘게 떨며 흐느끼는

고달픈 영혼의 울음소리.......

별 없는 하늘 밑에 들어 줄 사람 없구나 !

 

 


 

 

심훈 시인 / 봄비

 

 

하나님이 깊은 밤에 피아노를 두드리시네

건반 위에 춤추는 하얀 손은 보이지 않아도

섬돌에, 양철 지붕에, 그 소리만 동당 도드랑

이 밤엔 하나님도 답답하셔서 잠 한숨도 못 이루시네

 

 


 

 

심훈(沈熏) 시인 / 소설가.영화인) 1901년-1936년

본명은 심대섭(沈大燮). 본관은 청송(靑松). 호는 해풍(海風). 아명은 삼준 또는 삼보. 서울 출생. 아버지 심상정(沈相珽)의 3남 1녀 중 3남이다. 191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17년 왕족인 이해영(李海暎)과 혼인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투옥, 퇴학당하였다.

 

심훈(沈熏) 시인 / 1901∼1936

본명 : 심대섭(沈大燮) 금강생, 금호어초(琴湖漁樵), 백랑(白浪), 해풍(海風)

1901년 서울 노량진 출생

1919년 경성 제일 고보 재학시 3·1 운동에 참가

1919년 경성제일고보 중퇴

1922?,23?년 중국 항주(杭州) 지강(之江) 대학 극문학부 중퇴, 귀국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 역임

1924년 동아일보에 번안 소설 「미인의 한」후반부를 쓰면서 문단 활동 시작

1926년 동아일보에 '탈춤'을 발표

1935년 동아일보사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현상 모집에 '상록수'당선.

1936년 사망

저서 시집 <그날이 오면>한성도서주식회사,1949

소설집 <상록수>한성도서1936. <심훈전집>한성도서 1953.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