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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노천명 시인 / 희망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10.

노천명 시인 / 희망

 

 

꽃술이 바람에 고개짓하고

숲들 사뭇 우짖습니다

 

그대가 오신다는 기별만 같아

치맛자락 풀덤불에 긁히며

그대를 맞으러 나왔습니다

 

내 낭자에 산호잠 하나 못 꽃고

실안개 도는 갑사치마도 못 걸친 채

그대 황홀히 나를 맞아주겠거니----

오신다는 길가에 나왔습니다

 

저 산말낭에 그대가 금시 나타날 것만 같습니다

녹음 사이 당신의 말굽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내 가슴이 왜 갑자기 설렙니까

 

꽃다발을 샘물에 축이며 축이며

산마루를 쳐다보고 또 쳐다봅니다  


별을 쳐다보며, 희망사, 1953

 

 


 

 

노천명 시인 / 여인부(女人賦)

 

 

미용사에게

결발(結髮)을 읽히는 대신

무릇 여인이여

온달에게서 바보를 배우라

총명한 데에 여인은

가끔 불행을 지녔다

 

진실로 아리따운 여인아

네 생각이 높고 맑기

저 구월의 하늘 같고

 

가슴에 지닌 향랑보다

너는 언제고 마음이 더 향그러워라

 

여인 중에

학처럼 몸을 갖는 이가 있어 보라

물가 그림자를 보고

외로워도 좋다

 

해연(海燕)은 어디다

집을 짓는지 아느냐


창변, 매일신보사, 1945

 

 


 

노천명 [盧天命, 1912.9.2∼1957.12.10]  시인

1912년 황해도의 장연(長淵)에서 출생. 진명학교(進明學校)를 거쳐, 이화여전(梨花女專) 영문학과 졸업. 이화여전 재학 때인 1932년 《신동아》 6월호에 〈밤의 찬미(讚美)>  를 발표하며 데뷔. 저서로는 시집으로 1938년 초기의 작품 49편을 수록한 제1시집 『산호림(珊瑚林)』, 향토적 소재를 무한한 애착을 가지고 노래한 〈남사당(男寺黨)>, 〈춘향>,  〈푸른 5월>  등이 수록된

1945년 2월 출간된  제2시집 『창변(窓邊)』 6·25전쟁 당시 미처 피난하지 못해 문학가동맹에 가담한 죄로 부역 혐의를 받고 일시 투옥되어 옥중시와 출감 후의 착잡한 심정을 노래한 시들이 수록되어 있는 1953년  출간된  제3시집 『별을 쳐다보며』와 수필집으로 『산딸기』, 『나의 생활백서(生活白書)』 등이 있음. 1957년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