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 시인 / 산 너머 남촌에는
1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2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다나.
3 산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 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영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였다 이어 오는 가느단 노래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해당화, 삼천리사, 1942
김동환 시인 / 봄이 오면
1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꽃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
2 봄이 오면 하늘 우에 종달새 우네 종달새 우는 곳에 내 마음도 울어 나물캐기 아가씨야 저 소리 듣거든 새만 말고 이 소리도 함께 들어주
3 나는야 봄이 오면 그대 그리워 종달새 되어서 말붙인다오 나는야 봄이 오면 그대 그리워 진달래꽃 되어 웃어본다오.
삼인시가집, 삼천리사, 1929
김동환 시인 / 웃은 죄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주고 그리고는 인사하기 웃고 받았지요.
평양성에 해 안뜬대두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삼인시가집,
삼천리사, 1929
김동환 시인 / 북청 물장수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 물을 솨아 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북청 물장수.
물에 젖은 꿈이 북청 물장수를 부르면 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 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진다.
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북청 물장수. 국경의 밤, 한성도서, 1924
김동환 시인 / 눈이 내리느니
북국에는 날마다 밤마다 눈이 내리느니, 회색 하늘 속으로 흰 눈이 퍼부을 때마다 눈 속에 파묻히는 하아얀 북조선이 보이느니.
가끔가다가 당나귀 울리는 눈보라가 막북강 건너로 굵은 모래를 쥐어다가 추위에 얼어 떠는 백의인의 귓불을 때리느니.
춥길래 멀리서 오신 손님을 부득이 만류도 못하느니, 봄이라고 개나리꽃 보러 온 손님을 눈 발귀에 실어 곱게 남국에 돌려보내느니.
백웅이 울고 북랑성이 눈 깜박일 때마다 제비 가는 곳 그리워하는 우리네는 서로 부둥켜 안고 적성을 손가락질하며 얼음 벌에서 춤추느니.
모닥불에 비치는 이방인의 새파란 눈알을 보면서, 북국은 추워라, 이 추운 밤에도 강녘에는 밀수입 마차의 지나는 소리 들리느니, 얼음장 트는 소리에 쇠방울 소리 잠겨지면서.
오호, 흰 눈이 내리느니 흰 눈이 내리느니, 보오얀 흰 눈이 북새로 가는 이사꾼 짐짝 위에 말없이 함박눈이 잘도 내리느니.
국경의 밤, 한성도서, 1924
김동환 시인 / 강이 풀리면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 배가 오면은 임도 탔겠지
임은 안 타도 편지야 탔겠지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임이 오시면 이 설움도 풀리지 동지 섣달에 얼었던 강물도
제멋에 녹는데 왜 아니 풀릴까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삼인시가집, 삼천리사,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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