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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장만영 시인 / 사랑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6.

장만영 시인 / 사랑

 

 

서울 어느 뒷 골목

번지없는 주소엔들 어떠랴,

조그만 방이나 하나 얻고

순아 우리 단 둘이 사자.

 

숨박꼴질하던

어린 적 그 때와 같이

아무도 모르게

꼬옹 꽁 숨어 산들 어떠랴,

순아 우리 단 둘이 사자.

 

단 한 사람

찾아 주는 이 없는들 어떠랴.

낮에는 햇빛이

밤에는 달빛이

가난한 우리 들창을 비춰 줄게다.

순아 우리 단 둘이 사자.

 

깊은 산 바위 틈

둥지 속의 산비둘기처럼

나는 너를 믿고

너는 나를 의지하며

순아 우리 단 둘이 사자.

 

 


 

 

장만영 시인 / 정야

 

 

이슬에 젖어

이슬 내린 풀잎을 밟고 가노라면

우거진 수풀 속에

무슨 슬픈 이야기라도 있을 듯한 조그만 집이 한 채.

등불 켜지 않아 캄캄한 속에

달빛에 부서지는 파도처럼

유리창만이 번쩍거리는 저 낡은 집엔

어느 외로운 이가

세상을 버리고, 세상한테 잊히어

홀로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울타리 가에 숨어 뜰안을 들여다본다.

달빛 속에 꽃향기가 그윽히 풍긴다.

꽃향기 속에 여인인 양 싶은 이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바람도 없이

꽃잎만이 낙옆처럼 우수수 지던 날 밤이었다

 

 


 

 

장만영(張萬榮.1914.1.25∼1975.10.8) 시인

호 초애(草涯). 황해도 연백(延白) 출생. 경성 제2고보를 거쳐 도일하여 도쿄(東京) 미자키(三崎) 영어학교 고등과를 졸업하였다. 1932년 [동광(東光)]지에 투고한 시 <봄노래>로 김억(金億)의 추천을 받으면서 데뷔, 그 후 <마을의 여름밤> <겨울밤의 환상(幻想)> <비 걷은 아침> 등을 계속 발표했다.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도시 대신 농촌, 문명 대신 자연을 소재로 하여 동심에 가까운 전원적인 정서를 서정적ㆍ현대적인 감성으로 읊은 것이 그의 시의 특징이다. 1937년 제1시집 <양(羊)>을 간행하여 최재서(崔載瑞) 등으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1939년 제2시집 <축제(祝祭)>를 간행하고 1948년 출판사 [산호장(珊瑚莊)]과 백천온천(白川溫泉)을 자영하기도 했다. 1954년 서울신문 출판국장, 1957년 한국시인협회 결성에 참여, 부회장(1959), 회장(1966) 역임. 만년에는 별로 시작 활동을 하지 않았다. 묘지 : 용인 공원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