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근대)

김광균 시인 / 성호부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16.
제목 없음

김광균 시인 / 성호부근(星湖附近)

 

 

 

양철로 만든 달이 하나 수면(水面) 위에 떨어지고

부서지는 얼음 소래가

날카로운 호적(呼笛)같이 옷소매에 스며든다.

 

해맑은 밤바람이 이마에 나리는

여울가 모래밭에 홀로 거닐면

노을에 빛나는 은모래같이

 

호수는 한 포기 화려한 꽃밭이 되고

여윈 추억(追憶)의 가지가지엔

조각난 빙설(氷雪)이 눈부신 빛을 발하다.

 

 

낡은 고향의 허리띠같이

강물은 길―게 얼어붙고

 

차창(車窓)에 서리는 황혼 저 머얼리

노을은

나어린 향수(鄕愁)처럼 희미한 날개를 펴고 있다.

 

 

앙상한 잡목림(雜木林) 사이로

한낮이 겨운 하늘이 투명한 기폭(旗幅)을 떨어뜨리고

 

푸른 옷을 입은 송아지가 한 마리

조그만 그림자를 바람에 나부끼며

서글픈 얼굴을 하고 논둑 위에 서 있다.

 

-<조선일보>(1937)-

 

 


 

 

김광균 시인 / 은수저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 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 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문학>(1946)-

 

 


 

김광균 [金光均, 1914.1.19 ~ 1993.11.23]  시인

1914년 개성에서 출생. 호는 우두(雨杜). 개성상업학교 졸업. 1926년 《중외일보》에 〈가는 누님〉을 발표하며 등단.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雪夜(설야)〉 당선.  1939년 『와사등』을  시작으로 『기항지』, 『황혼가』, 『추풍귀우』, 『임진화』 등의 시집 출간.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 1989년 지용문학상 수상. 1993년 부암동 자택에서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