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균 시인 / 성호부근(星湖附近)
Ⅰ
양철로 만든 달이 하나 수면(水面) 위에 떨어지고 부서지는 얼음 소래가 날카로운 호적(呼笛)같이 옷소매에 스며든다.
해맑은 밤바람이 이마에 나리는 여울가 모래밭에 홀로 거닐면 노을에 빛나는 은모래같이
호수는 한 포기 화려한 꽃밭이 되고 여윈 추억(追憶)의 가지가지엔 조각난 빙설(氷雪)이 눈부신 빛을 발하다.
Ⅱ
낡은 고향의 허리띠같이 강물은 길―게 얼어붙고
차창(車窓)에 서리는 황혼 저 머얼리 노을은 나어린 향수(鄕愁)처럼 희미한 날개를 펴고 있다.
Ⅲ
앙상한 잡목림(雜木林) 사이로 한낮이 겨운 하늘이 투명한 기폭(旗幅)을 떨어뜨리고
푸른 옷을 입은 송아지가 한 마리 조그만 그림자를 바람에 나부끼며 서글픈 얼굴을 하고 논둑 위에 서 있다.
-<조선일보>(1937)-
김광균 시인 / 은수저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 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 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문학>(1946)-
|
'◇ 시인과 시(근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석 시인 /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외 4편 (0) | 2019.07.16 |
---|---|
김동환 시인 / 국경의 밤 (0) | 2019.07.16 |
백석 시인 / 광원(曠原) 외 2편 (0) | 2019.07.15 |
신석정 시인 / 나의 꿈을 엿보시겠읍니까? 외 2편 (0) | 2019.07.15 |
서정주 시인 / 화사(花蛇) 외 3편 (0) | 2019.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