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 시인 / 가는 길
내 홀로 지킨 딴 하늘에서 받아들인 슬픔이라 새길까 하여 지나가는 불꽃을 잡건만 어둠이 따라서며 재가 떨어진다.
바람에 날려 한 많은 이 한 줌 재마저 사라지면 외론 길에서 벗하던 한 줄기 눈물조차 돌아올 길 없으리.
산에 가득히 …… 들에 펴듯이 …… 꽃은 피는가 …… 잎은 푸른가 …… 옛 꿈의 가지가지에 달려 찬사를 기다려 듣고 자려는가.
비인 듯 그 하늘 기울어진 곳을 가다가 그만 낯선 것에 부딪혀 소리 없이 열리는 문으로 가는 것을 나도 모르게 나는 가고 있다.
김광섭 / 생의 감각
여명(黎明)의 종이 울린다. 새벽 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빛은 장마에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현대문학>(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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