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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박남수 시인 / 봄의 幻覺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25.
제목 없음

박남수 시인 / 봄의 幻覺

 

 

복사꽃 피면 복사꽃 내음새가 발갛게

일렁이는 시골에서 하품을 하다가

놋방울이 흔들리면 꼬리 한번 치고

황소는 취할 듯이 꽃잎을 먹고

육자배기 한 가락, 음매......

얼굴을 쳐들면 들녘이 붉은 저편에,

시커먼 汽動車가 뽀오 지나가는 봄이 있었다.

 

 


 

 

박남수 시인 / 소로(小路)

 

 

언젠가 왔던 길,

두리번거리지만, 우리가

언제 왔었는지 물어 볼 사람 이제 없네.

옆에서 늘 함께 거닐던 키가 작은 사람

굽어보아도 보이지 않네.

혼자서 거니는 좁은 길,

이제

기쁘지도 즐겁지도 않네.

 

 


 

 

박남수 시인 / 종달새

 

 

보리밭에 서렸던

아지랑이 영신들이 지금은

하늘에서 얼굴만 내어 밀고

군종이 울리는 음악의 잔치가 되어

고운 갈매의 하늘을

포롱

포롱

포롱

날고 있다.

흐르고 있다.

포롱

포퐁

포롱

시냇물 위에 날리는 잔바람에

하늘이 떨어져

파안의 즐거운 파문

 

 


 

 

박남수 시인 / 밝은 정오

 

 

어두운 북향 방에

환히 한 오리의 볕이 들어

누웠는 눈이 부시다.

벽에 걸온 명도용 거울의 장난.

가끔은 불의의 볕이라도 들어

어처구니없이 밝은 마음으로

더부룩히 자란 수염을 다듬어보는

뚜우가 우는 밝은 정오.

 

 


 

박남수(朴南秀) 시인(1918.5.3-1994.9.17)

평양 출생. 숭실상고를 거쳐 1941년 일본 주오(中央)대학을 졸업. 초기에는 자연적 서경과 서정 속에서 절박한 감정을 은유적으로 환기하는 시를 썼으며, 후기에는 존재성을 규명하려는 주지적 경향을 가졌다. 유학 시절 제1회 <문장>지의 추천을 받은 김종한, 이용악 등과 사귀게 되면서, 그들의 권유로 <문장>지에 투고하였는데, 1939년부터 1940년까지 정지용에게 추천됨.

1940년에 첫 시집인 <초롱불>을 낸 이후 “갈매기 소묘”, “새의 암장(暗葬)” 등 정갈하면서도 의식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시를 써 왔다. 미국에서 지낸 이국 생활의 외로움을 그린 <그리고 그 이후>라는 시집을 펴내기도 함. 1957년에는 유치환, 박목월, 조지훈, 장만영 등과 함께 '한국시인협회'를 창립했으며, 아시아 자유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1994년 6월에는 조국 통일에의 절실한 심경을 노래한 시 “꿈의 물감”으로 서울신문사가 제정한 공초(空超)문학상(제2회)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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