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시인 / 정천한해(情天恨海)
가을 하늘이 높다기로 정(情) 하늘을 따를소냐. 봄 바다가 깊다기로 한(恨) 바다만 못하리라.
높고 높은 정(情) 하늘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손이 낮아서 오르지 못하고 깊고 깊은 한(恨) 바다가 병될 것은 없지마는 다리가 짧아서 건너지 못한다.
손이 자라서 오를 수만 있으면 정(情) 하늘은 높을 수록 아름답고 다리가 길어서 건널 수만 있다면 한(恨) 바다는 깊을수록 묘하니라.
만일 정(情) 하늘이 무너지고 한(恨) 바다가 마른다면 차라리 정천에 떨어지고 한해에 빠지리라.
아아 정(情) 하늘이 놓은 줄만 았았더니 님의 이마보다는 낮다.
아아 한(恨) 바다가 깊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무릎보다는 얕다.
손이야 낮든지 다리야 짧든지 정(情) 하늘에 오르고 한(恨) 바다를 건너려면 님에게만 안기리라.
-<님의 침묵>(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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