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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조지훈 시인 / 낙화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24.

조지훈 시인 / 낙화

 

 

1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상아탑>(1946)-

 

 


 

 

조지훈 시인 / 다부원(多富院)에서

 

 

한 달 농성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彼我) 공방의 화포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

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풍경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의 시체

 

스스로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역사 앞에서>(1959)-

 

 


 

 

조지훈 시인 / 민들레꽃

 

 

까닭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距離)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풀잎단장>(1952)-

 

 


 

 

조지훈 시인 / 석문(石門)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 년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희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남긴 푸른 도포 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 감을 어찌합니까?

 

몇만 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 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 허공 중천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 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이지 못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 년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 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조지훈 전집>(1973)-

 

 


 

조지훈 [趙芝薰, 1920.12.3~1968.5.17]

1920년 경북 영양에서 출생. 1941년 혜화전문학교 문과 졸업. 1939년 《文章(문장)》에 〈고풍 의상〉, 〈승무〉, 〈봉황수〉 등을 발표하며 등단. 박목월·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불림. 저서로는 시집 『청록집』, 『풀잎 단장』, 『조지훈 시선』, 『역사 앞에서』, 『여운』, 수필집 『돌의 미학』, 『지조론』, 『창에 기대어』, 시론집 『시의 원리』, 학술서 『한국문화사서설』, 역사서 『한국민족운동사』 등이 있음. 1948년 고려대 문과대 교수로 1968년 사망 이전까지 재직.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