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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이형기 시인 / 낙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23.

이형기 시인 / 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아롱아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적막강산>(1963)-

 

 


 

 

이형기 시인 / 폭포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을.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적막강산>(1963)-

 

 


 

 

이형기 시인 (李炯基, 1933~2005)

1933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이형기는 한국 문단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시인이 된 기록을 갖고 있다. 이형기는 6·25가 일어나기 직전에 『문예』의 추천 제도를 통해 정식으로 문단에 나오는데, 이것은 그의 나이 겨우 열일곱 살 때의 일이다. 그는 1·4후퇴 때 피난지 부산에 모여든 문단의 선배들과 젊은 문학도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한 몸에 받는가 하면, 30대 초반의 나이에 벌써 중견 문인의 권위를 세우기도 한다.

1960년대 초반의 문단을 뜨겁게 달군 참여 · 순수 논쟁 때 순수 문학 옹호론의 대표 주자로 나선 이형기는 1963년에 들어 시집 『적막 강산』을 펴내며 문단의 중심부에 진입한다. 그는 진주농림학교에 입학하면서 문학과 철학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어댄다. 진주농림 5학년 때인 1949년 가을, 그는 ‘촉석루 예술제’ 백일장에서 「만추」로 장원을 차지한다. 이어 그는 서정주의 추천으로 『문예』에 시 「비오는 날」 · 「코스모스」 · 「강가에서」 등을 선보이며 문단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