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시인 / 가정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 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 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 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 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 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 않나. 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 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 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 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카톨릭청년>(1936)-
이상 시인 / 지비(紙碑) 2
안해는 정말 조류(鳥類)였던가 보다 안해가 그렇게 수척하고 가벼워졌는데도 날으지 못한 것은 그 손가락에 낑기웠던 반지 때문이다 오후에는 늘 분(粉)을 바를 때 벽(壁) 한 겹 걸러서 나는 조롱(鳥籠)을 느낀다 얼마 안 가서 없어질 때까지 그 파르스레한 주둥이로 한 번도 쌀알을 쪼으려들지 않았다 또 가끔 미닫이를 열고 창공(蒼空)을 쳐다보면서도 고운목소리로 지저귀려 들지 않았다 안해는 날을 줄과 죽을 줄이나 알았지 지상(地上)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비밀한 발을 늘 버선 신고 남에게 안보이다가 어느날 정말 안해는 없어졌다 그제야 처음 방안에 조분(鳥糞) 내음새가 풍기고 날개 퍼득이던 상처가 도배 위에 은근하다 헤뜨러진 깃부시러기를 쓸어 모으면서 나는 세상에도 이상스러운 것을 얻었다 산탄(散彈) 아아 안해는 조류이면서 염체 닫과 같은 쇠를 삼켰더라 그리고 주저앉았더라 산탄은 녹슬었고 솜털 내음새도 나고 천근 무게더라 아아
-<조선중앙일보(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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