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수 시인 / 맨하탄의 갈매기
맨하탄 어물시장에 날아드는 갈매기 끼룩끼룩 울면서 서럽게 서럽게 날고 있는 핫슨 강의 갈매기여 고층건물 사이를 길 잘못들은
갈매기 부산 포구에서 끼룩 끼룩 서럽게 서럽게 울던 갈매기여 눈물 참을 것 없이 두보처럼 두보처럼 난세를 울자
슬픈 비중의 세월을 끼룩끼룩 울며 남포면 어떻고 다대포면 어떻고 삿슨 강변이면 어떠냐 날이 차면 플로리다 쯤 플로리다 쯤 어느 비치를 날면서 세월을 보내자구나
중기시집『갈매기의 묘소』이후 지속적으로 새의 이미지를 지향해 왔던 경향은 후기시에서도 계속되는데 이 시에서도 '갈매기' 이미지를 통해 자아를 투사한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사물이다. 원래 부산 포구에 날고 있어야 하는 갈매기가 머나먼 맨하탄 핫슨강변에 날고 있다는 설정은 제 갈 길을 잃어버린 화자의 심정과 직결된다.
서글픈 갈매기의 운명은 화자가 급기야는 자아에 대한 체념의식으로 확대되어 더 나은 삶을 위해 비행하던 갈매기의 이상은 사라지고 아무 곳에나 정착해 살면 된다는 무의지의 상태가 되어 버린다. 새를 통한 귀소의식이나 회귀본능은 삶에 대한 전망이 부재하는 현실 속에서 시인의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자아 치유의 방법인 것이다.
박남수 시인 / 풍광 속에서
낳고 자라서 죽음으로 탄생되는 것은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가장 순수한 흙이되어 태양이 쪼이고 바람이 부는 풍광 속에서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되어산다, 영원, 영원을 산다
이 시에서 화자는 죽음을 소멸로 보지 않고 있다. '죽음으로 탄생'된다는 표현을 통해 죽음이란 영원히 사는 것이라는 순환론적 사고를 보여주고 있다. 죽음과 겨울의 이미지는 삶과 계절의 끝이 아니라 가장 순수한 상태로 '영원'성을 유지하는 것을 일컫는다. 탄생과 성장,노화와 죽음이라는 인생의 역정이 마치 봄,여름,가을,겨울이 계속해서 순환되는 것처럼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완성이며,새로운 시작이자 탄생이 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박남수 시인 / 회생 1· 소생에서
나뭇가지에 달려 꽃이 피었을 때, 꽃은 비로소 지기 시작한다.
한 잎 두 잎 모양새를 망가트리고 빛갈을 지워, 이제 꽃은 꽃이 아니라 열매
열매로 맺혔을 때 이윽고 빠개져 땅으로 쏟아진다. 쏟아진 열매는 줄기를 세우고 뿌리를 내린다.
위의 시에서 꽃이 지면서 남긴 열매다. 다시 줄기를 세우고 뿌리를 내리는 순환적인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꽃은 순간적인 존재로 곧 소멸되지만 소멸의 소멸의 순간에 맺힌 열매는 잘 무르익어 다시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 과정을 겪는다. 생과 사의 경계는 다시 무너지고 결과적으로 소멸은 곧 생성으로 연결되어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게 되는 과정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생성과 소멸을 통합적으로 인식하려는 후기 시의 경향은 지상과 천상의 통합적이고 일원적인 시,공간의식에 근원을 둔 것이다. 객관성의 성취가 불가능한 자아 상실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이항대립적 공간과 의미를 통하여 합일에 이르는 무화의 경지에 돌한 시적 작업은 시인이 전 생애를 통해 추구해 온 가치관이 완성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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