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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박남수 시인 / 손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30.

 박남수 시인 / 손

 

 

物像이 떨어지는 瞬間

휘뚝, 손은 기울며

虛空에서 기댈 데가 없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손은 所有하고

또 놓쳐왔을까.

 

잠간씩 가벼보는

虛無의 體積.

 

그래서 손은 怒하면

주먹이 된다.

주먹이 풀리면

손바닥을 맞부비는

따가운 祈願이 된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손은

빈 짓만 되풀이해 왔을까.

 

손이

이윽고 確信한 것은,

역시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뿐이었다.


신의 쓰레기, 모음출판사, 1964

 

 


 

 

박남수 시인 / 오수(午睡)

 

 

畵面에 문지른 짙푸른 색깔에 묻혀 깔먹는 山家.

바다 속의 숨가쁜 더위가 午睡에 조을고 있다.

따거운 볕밭은 反射하는 太陽의 거울.

나무 가지에 걸린 바람의 손은 나뭇잎을 흔들었다.

흔들리는 푸름에서 깨어난 매미가 지지지잉 울었다.

어디선가 수잠을 깬 암매미도 맴 매애앰 하품을 하고 있었다.

 

 


 

 

박남수 시인 / 바람

 

 

1

바람은 울고 있었다.

이룰 수 없는 형상(形象)을 끌고

나무 그늘에서

나무 가지에서

흐렁 흐렁 흐느끼고 있었다.

 

꽃밭에 뛰어들면

꽃이 되고

날리어 흐르는 바람의 수염.

푸른 하늘에

걸리어선

나부끼는 기폭이 되다가,

 

어쩔 수 없으면

서러워 부림치다가,

노여워

흩날려 불리는꽃잎에도

부러져 꺾이는

가지에도

몸을 부벼 울다가

 

바람은 구름이 되어

하늘에

졸다가,

 

서러우면

떨리는 비가 되다가,

 

결국은 이루지 못하는 형상이 되어

쏠리듯

날리면서

피리의 흐느낌.


2

흐느껴 울고 있었다.

갈대의 가슴에서도

풀벌레의 날개에서도

흐렁 흐렁 울고 있었다.


네거리를 걸어서 가도

가슴에 복받는 가락이

흐느끼는 고독 처럼

혼자서 어디론가 숨듯이

바람은 땅 위에 쓰러져 굴고 있었다.


매기 소묘(素描), 춘조사, 1958

 

 


 

 

박남수 시인 / 종소리

 

 

나는 떠난다. 청동(靑銅)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진폭(振幅)의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하나의 소리가 되어.

 

인종(忍從)은 끝이 났는가.

청동의 벽에

'역사'를 가두어 놓은

칠흑의 감방에서

 

나는 바람을 타고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꽃에서는 웃음이 되고

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

 

먹구름이 깔리면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뇌성(雷聲)이 되어

가루 가루 가루의 음향이 된다.

 

-<새의 암장>(1970)-

 

 


 

 

박남수 시인 / 할머니 꽃씨를 받으시다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방공호 위에

어쩌다 핀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다.

 

호(壕) 안에는

아예 들어오시질 않고

말이 숫제 적어지신

할머니는 그저 노여우시다.

 

― 진작 죽었더라면

이런 꼴

저런 꼴

다 보지 않았으련만…….

 

글쎄 할머니,

그걸 어쩌란 말씀이셔요.

숫제 말이 적어지신

할머니의 노여움을

풀 수는 없었다.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인젠 지구가 깨어져 없어진대도

할머니는 역시 살아 계시는 동안은

그 작은 꽃씨를 받으시리라.

 

매기 소묘(素描), 춘조사, 1958

 

 


 

박남수(朴南秀) 시인(1918.5.3-1994.9.17)

평양 출생. 숭실상고를 거쳐 1941년 일본 주오(中央)대학을 졸업. 초기에는 자연적 서경과 서정 속에서 절박한 감정을 은유적으로 환기하는 시를 썼으며, 후기에는 존재성을 규명하려는 주지적 경향을 가졌다. 유학 시절 제1회 <문장>지의 추천을 받은 김종한, 이용악 등과 사귀게 되면서, 그들의 권유로 <문장>지에 투고하였는데, 1939년부터 1940년까지 정지용에게 추천됨.

1940년에 첫 시집인 <초롱불>을 낸 이후 “갈매기 소묘”, “새의 암장(暗葬)” 등 정갈하면서도 의식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시를 써 왔다. 미국에서 지낸 이국 생활의 외로움을 그린 <그리고 그 이후>라는 시집을 펴내기도 함. 1957년에는 유치환, 박목월, 조지훈, 장만영 등과 함께 '한국시인협회'를 창립했으며, 아시아 자유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1994년 6월에는 조국 통일에의 절실한 심경을 노래한 시 “꿈의 물감”으로 서울신문사가 제정한 공초(空超)문학상(제2회)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