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린 시인 / 태양(太陽)이 직각(直角)으로... -태양(太陽)이 직각(直角)으로 떨어지는 서울
태양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서울의 거리는 프라타나스가 하도 푸르러서 나의 심장마저 염색될까 두려운데
외로운 나의 투영을 깔고 질주하는 군용트럭은 과연 나에게 무엇을 가져왔나 비둘기처럼 그물을 헤치며 지나가는 당신은 나의 과거를 아십니까 그리고 나와 나의 친우들의 미래를 보장하실 수 있습니까
한때 몹시도 나를 괴롭히던 화려한 영상들이 결코 새로울 수 없는 모멘트에 서서
대학교수와의 대담마저 몹시도 권태로워지는 오후 하나의 로직크는 바람처럼 나의 피부를 스치고 지나간다
포도(鋪道)위에 부서지는 얼굴의 파편들이 슬픈 마음을 알아줄 리 없어
손수건처럼 표백된 사고(思考)를 날리며 황혼이 전신주처럼 부풀어 오르는
가각(街角)을 돌아 프라타나스처럼 푸름을 마시어 본다
김경린 시인 / 파장(波長)처럼
파장(波長)처럼 울려오는 너의 목소리를 잊어버렸는지 전쟁은 시름없는 여파를 나의 뜰앞에 남기고 지나갔다
낡아 빠진 전통위에 정지하는 속도를 따라 신사들의 사교술은 번식하였고 하늘이 그리운 나의 눈동자 위에 어두움은 길게 내려와 있었다
삼림(森林)처럼 여름이 우거지는 뜰앞에 너의 목소리는 그침없이 울려오고 새하얀 빛깔은 나의 가슴을 뚫고 멀리 지평(地平)을 그으며 지나갔다
김경린 시인 / 표류하기에는
탁류에 흘러가는 흰 나비와도 같이 길 가에 뿌리고 가야 할 참회(懺悔)도 없이 다만 흐르는 물결속에 표류하기에는 너무나 뜨거운 태양과 수많은 의리들이 나를 따라 주었다
혹은 가슴에 장식하여야 할 헌장(憲章)마저도 준비없는 오늘에의 연쇄가 하나의 타성과도 같이 나를 포박하여 주는 그늘 밑에서 한때 구름속에 빛나는 꽃무늬와 더불어 바람이 기중기처럼 정지하는 스윙스에 무르익어 가는 여름도 바라보며
항상 꽃나래처럼 뻗어 가는 행렬들이 푸른 사념을 가슴에 안고 나의 안구(眼球)에 날아드는 것을 막을 길 없어 얼룩진 추상의 계곡에 안개같은 비가 내렸는지도 모른다
김경린 시인 / 푸른 길 위에
하늘처럼 우그러져 보이는 수평선 너머로 가벼운 증오는 사라지고 그림자처럼 얼룩이는 길바닥 위에 황혼은 떨어져 있었다
말없이 기울어져 가는 세월과 함께 소년은 바다를 향하여 남으로 가버리고 바람처럼 달리는 열차속에 육친들의 부드러운 속삭임도 없었다
기억처럼 멀어져 가는 향수를 안타까이 부르며 그림자처럼 얼룩이는 길바닥 위에 하늘은 푸르게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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