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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경린 시인 / 태양(太陽)이 직각(直角)으로...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30.

김경린 시인 / 태양(太陽)이 직각(直角)으로...

-태양(太陽)이 직각(直角)으로 떨어지는 서울

 

 

태양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서울의 거리는

프라타나스가 하도 푸르러서

나의 심장마저 염색될까 두려운데

 

외로운

나의 투영을 깔고

질주하는 군용트럭은

과연 나에게 무엇을 가져왔나

비둘기처럼

그물을 헤치며 지나가는

당신은 나의 과거를 아십니까

그리고

나와 나의 친우들의

미래를 보장하실 수 있습니까

 

한때

몹시도 나를 괴롭히던

화려한 영상들이

결코 새로울 수 없는

모멘트에 서서

 

대학교수와의

대담마저

몹시도 권태로워지는 오후

하나의 로직크는

바람처럼

나의 피부를 스치고 지나간다

 

포도(鋪道)위에

부서지는 얼굴의 파편들이

슬픈 마음을 알아줄 리 없어

 

손수건처럼

표백된 사고(思考)를 날리며

황혼이

전신주처럼 부풀어 오르는

 

가각(街角)을 돌아

프라타나스처럼

푸름을 마시어 본다

 

 


 

 

김경린 시인 / 파장(波長)처럼

 

 

파장(波長)처럼

울려오는 너의 목소리를

잊어버렸는지

전쟁은

시름없는 여파를

나의 뜰앞에 남기고 지나갔다

 

낡아 빠진 전통위에

정지하는 속도를 따라

신사들의

사교술은 번식하였고

하늘이 그리운

나의 눈동자 위에

어두움은 길게 내려와 있었다

 

삼림(森林)처럼

여름이 우거지는 뜰앞에

너의 목소리는

그침없이 울려오고

새하얀 빛깔은

나의 가슴을 뚫고

멀리 지평(地平)을 그으며 지나갔다

 

 


 

 

김경린 시인 / 표류하기에는

 

 

탁류에

흘러가는 흰 나비와도 같이

길 가에

뿌리고 가야 할 참회(懺悔)도 없이

다만

흐르는 물결속에

표류하기에는

너무나 뜨거운 태양과

수많은 의리들이 나를 따라 주었다

 

혹은

가슴에 장식하여야 할

헌장(憲章)마저도 준비없는

오늘에의 연쇄가

하나의 타성과도 같이

나를 포박하여 주는 그늘 밑에서

한때

구름속에

빛나는 꽃무늬와 더불어

바람이 기중기처럼

정지하는 스윙스에

무르익어 가는 여름도 바라보며

 

항상

꽃나래처럼

뻗어 가는 행렬들이

푸른 사념을 가슴에 안고

나의 안구(眼球)에 날아드는 것을

막을 길 없어

얼룩진 추상의 계곡에

안개같은 비가 내렸는지도 모른다

 

 


 

 

김경린 시인 / 푸른 길 위에

 

 

하늘처럼

우그러져 보이는 수평선 너머로

가벼운 증오는 사라지고

그림자처럼

얼룩이는 길바닥 위에

황혼은 떨어져 있었다

 

말없이

기울어져 가는 세월과 함께

소년은 바다를 향하여

남으로 가버리고

바람처럼

달리는 열차속에

육친들의

부드러운 속삭임도 없었다

 

기억처럼

멀어져 가는 향수를

안타까이 부르며

그림자처럼

얼룩이는 길바닥 위에

하늘은 푸르게 떨어져 있었다

 

 


 

 

 김경린(金璟麟.1918.4.24∼2006)

시인ㆍ실업가. 함경북도 경성(鏡城) 출생. 1942년 일본 와세다 대학 토목공학과 졸업. 1967년 한양대 토목공학과 졸업, 1970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석사과정 수료. 1939년 조선일보에 <차창> <꽁초> <화안(畵眼)>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 1940년 일본의 시잡지 [Vou]의 동인으로 시를 쓰기 시작, 모더니즘 운동에 참여, 해방 후에 귀국, 1950년 [후반기] [신시론(新詩論)] 동인으로 모더니즘운동에 앞을 서면서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썼다.

 한국시인협회 사업부 간사, 서울시 수도과장, 건설부 국토보전국 도시과장, 경설공무원교육원장 및 영남국토건설국장, 수자원개발공사 이사, 자유문학자협회 중앙위원, 한국신시학회 회장 역임. 세기종합기술공사 대표이사를 거쳐 현재 동 명예회장. 8ㆍ15 후에는 주로 토목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후반기 동인들과 함께 시집을 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제5회 문학상(1986), 1988년 제3회 상화시인상(1988), 녹조근정훈장, 대통령표창, 예술평론가협회 최우수예술가상(1994)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