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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형원 시인 / 영원한 이별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4.

김형원 시인 / 영원한 이별

 

 

아이 보는 할멈이 추운 겨울을 두려워 하여

저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기와 고랑에 서리치고 바람 끝 차던 어느 아침이다

왜 호박같이 주름잡힌 그의 얼굴에

섭섭한 빛이 가득하여 눈물조차 그렁그렁 하며

 

보퉁이를 끼고 나오는 꼴을 보고

철없이 「엄마! 업어 」

 

칠십에 가까운 그가

두 살 된 어린 친구를 작별하고

「아가! 내년 봄에

따뜻하면 」하며

더운 눈물 흘리는 그의 눈에는

어렴풋이 묘지가 보였을 것이다.

 

 

아! 영원한 이별의 슬픔!

세상에 무엇이 이에 짝하랴

 

 


 

 

김형원 시인 / 숨쉬이는 목내이(木乃伊)

 

 

오, 나는 본다!

숨쉬이는 목내이를.

 

< 현대>라는 옷을 입히고

<제도>라는 약을 발라

<생활>이라는 관에 넣은

목내이를 나는 본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이미

숨쉬이는 목내이임을

아, 나는 조상한다!

 

< 개벽> (1922. 3)

 

 


 

 

김형원 시인 / 생장의 균등

 

 

창녀같은 해당화가 웃는 동산엔

귀한 집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봄날과 함께 길이길이 새어납니다.

 

넌출 벗는 땅 찔레가 깔린 강변엔

국거리 소리쟁이 캐는 소녀의

살망스런 콧노래가 흘러갑니다.

 

달착지근한 봄바람의 보드라운 손은

해당의 성장한 어깨를 치며 지나가

그의 입은 가련한 찔레와 입맞춥니다.

 

매력의 여주인 - 어여뿐 해당화

가난한 소녀의 친구 - 가련한 찔레

나는 이 곳에 생장의 균등을 봅니다.

 

 


 

 

김형원 시인 / 빙류(氷流)

 

 

강에 얼음이 흐른다

집채같은 치운 결정체가

바위 같고 칼날 같은

성에 장이 흘러간다

강둑이 터질 듯이 가뜩   

 

쇄! 쇄! 쇄!

빠지직! 빠지직!

무너지는 소리와

부딪치는 소리가

한없이 공포를 준다   

 

황혼의 회색막은

어느 듯 대지를 에워쌌다

어디선지 가냘픈 소리로

「사람 살리오...」하는

처참한 부르짖음이 들린다

 

(그러나 그 부르짖음은

나의 가슴속에서도 들린다

나의 가슴에도 얼음이 흐른다)

생명이 기인 가람에

성에가 남을 나는 본다

 

 


 

김형원(金炯元) 시인 / 1901~?

호: 석송(石松). 1900년 충청남도 논산에서 출생.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퇴. 1920 문단에 데뷔하여 <개벽>에 미국의 민중 시인 휘트먼을 소개. 1919년 『매일신보』에 기자로 입사. 1920년 8월 『동아일보』로 이직하여 사회부장, 같은 해 시 「이향(離鄕)」을 발표. 「아 지금은 새벽 네시」(『개벽』 1924년 11월호)를 발표한 이후, 『개벽(開闢)』과 『별건곤(別乾坤)』 등에 다수의 시를 발표.

1923년 도쿄특파원으로 근무., 반항적인 성격의 시 「분순의 피」 발표. 1924년 『동아일보(東亞日報)』의 개혁운동이 실패하자 『조선일보(朝鮮日報)』로 이직하여 사회부장·지방부장 등을 거쳤지만, 1925년 '조선일보 필화사건'으로 1926년 3개월의 금고형에 처해졌다. 1926년부터 1930년까지 『중외일보(中外日報)』의 사회부장·편집부장, 1933년부터 1937년까지 『조선일보』 편집국차장·국장 등을로 근무. 1938년 4월부터 1940년까지 『매일신보(每日新報)』의 편집국장을 맡았다. 1939년 7월 매일신보사에서 중일전쟁 2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성전(聖戰) 2주년 좌담회(6회)'에 매일신보사의 대표 중 한 명으로 참석했고, 그해 7월 결성된 배영동지회(排英同志會)의 평의원이 되었다. 1941년 9월 결성된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해방 이후 1945년 12월 복간된 『조선일보』을 비롯하여 『서울신문』·『대동신문(大東新聞)』 등에서 전무·부사장으로 재직했다. 1946년 이범석(李範奭)의 민족청년단(民族靑年團)의 부단장으로 활동했고, 1948년 부터 공보처 차장으로 재직하던 중 '서울신문 반정부이적행위 사건'과 관련, 1949년 퇴임했다. 1950년 6·25전쟁 중 납북되었고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