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원 시인 / 영원한 이별
아이 보는 할멈이 추운 겨울을 두려워 하여 저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기와 고랑에 서리치고 바람 끝 차던 어느 아침이다 왜 호박같이 주름잡힌 그의 얼굴에 섭섭한 빛이 가득하여 눈물조차 그렁그렁 하며
보퉁이를 끼고 나오는 꼴을 보고 철없이 「엄마! 업어 」
칠십에 가까운 그가 두 살 된 어린 친구를 작별하고 「아가! 내년 봄에 따뜻하면 」하며 더운 눈물 흘리는 그의 눈에는 어렴풋이 묘지가 보였을 것이다.
아! 영원한 이별의 슬픔! 세상에 무엇이 이에 짝하랴
김형원 시인 / 숨쉬이는 목내이(木乃伊)
오, 나는 본다! 숨쉬이는 목내이를.
< 현대>라는 옷을 입히고 <제도>라는 약을 발라 <생활>이라는 관에 넣은 목내이를 나는 본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이미 숨쉬이는 목내이임을 아, 나는 조상한다!
< 개벽> (1922. 3)
김형원 시인 / 생장의 균등
창녀같은 해당화가 웃는 동산엔 귀한 집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봄날과 함께 길이길이 새어납니다.
넌출 벗는 땅 찔레가 깔린 강변엔 국거리 소리쟁이 캐는 소녀의 살망스런 콧노래가 흘러갑니다.
달착지근한 봄바람의 보드라운 손은 해당의 성장한 어깨를 치며 지나가 그의 입은 가련한 찔레와 입맞춥니다.
매력의 여주인 - 어여뿐 해당화 가난한 소녀의 친구 - 가련한 찔레 나는 이 곳에 생장의 균등을 봅니다.
김형원 시인 / 빙류(氷流)
강에 얼음이 흐른다 집채같은 치운 결정체가 바위 같고 칼날 같은 성에 장이 흘러간다 강둑이 터질 듯이 가뜩
쇄! 쇄! 쇄! 빠지직! 빠지직! 무너지는 소리와 부딪치는 소리가 한없이 공포를 준다
황혼의 회색막은 어느 듯 대지를 에워쌌다 어디선지 가냘픈 소리로 「사람 살리오...」하는 처참한 부르짖음이 들린다
(그러나 그 부르짖음은 나의 가슴속에서도 들린다 나의 가슴에도 얼음이 흐른다) 생명이 기인 가람에 성에가 남을 나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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