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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모윤숙 시인 / 나의 별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4.

모윤숙 시인 / 나의 별

 

 

밤마다 나의 창문 가에

밤 새워 깨어 있는 나의 별아

너와 나 사이 길은 멀고도 멀어

저녁이면 내어미는 이 팔이

오늘 밤도 창문턱에 고달피 누웠다

이 마음에 떠 있는 그 사람과 같이도

영원히 푸르러 있는 나의 별아

너와 나 사이 길은 꿈같이도 아득해

밤마다 헤엄치는 나의 나래는

오늘 밤도 내 자리에 피곤히 돌아오노라

오오! 나의 별 사랑하는 너

나는 너의 푸른 눈동자에 취하여

맑은 영혼의 강변에 잠들고 싶다

맘 아픈 인생의 허무한 잠꼬대를

너의 빛 아래에서 산산히 깨쳐 보고 싶다

이 마음의 그리움이 구슬로 되었다면

흩어진 설움의 이 내 곡조를

한 줄 두 줄 이어서 그 하늘에 매이련만

기인 창공은 높고도 멀어

그리운 이 꿈은 깰 길도 없어라.

빛나는 지역, 조선장문사, 1933

             

 


 

 

모윤숙 시인 / 이 생명을

 

 

임이 부르시면 달려가지요.

금띠로 장식한 치마가 없어도

진주로 꿰맨 목도리가 없어도

임이 오라시면 나는 가지요.

 

임이 살라시면 사오리다.

먹을것 메말라 창고가 비었어도

빚 더미로 엠집 채찍 맞으면서도

임이 살라시면 나는 살아요.

 

죽음으로 깊을 길이 있다면 죽지요.

빈 손으로 임의 앞을 지나다니요.

내 임의 원이라면 이 생명을 아끼오리.

이 심장의 온 피를 다 빼어 바치리다.

 

무엔들 사양하리, 무엔들 안 바치리.

창백한 수족에 힘 나실 일이라면

파리한 임의 손을 버리고 가다니요.

힘 잃은 그 무릎을 버리고 가다니요.


빛나는 지역, 조선장문사, 1933

 

 


 

 

모윤숙 시인 / 기다림

 

 

천년을 한 줄 구슬에 꿰어

오시는 길을 한 줄 구슬에 이어 드리겠습니다.

하루가 천년에 닿도록

길고 긴 사무침에 목이 메오면

오시는 길엔 장미가 피어지지 않으오리다.

오시는 길엔 달빛도 그늘지지 않으오리다

 

먼 나라의 사람처럼

당신은 이 마음의 방언을 왜 그리 몰라 들으십니까?

우러러 그리움이 꽃피듯 피오면

그대는 저 오월강 위로 노를 저어 오시렵니까?

 

감초인 사랑이 석류알처럼 터지면

그대는 가만히 이 사랑을 안으려 나이까?

내 곁에 계신 당신이온데

어이 이리 멀고 먼 생각의 가지에서만

사랑은 방황하다 돌아서 버립니까?

 

 


 

 

모윤숙 시인 / 어머니께 바치는 詩

 

 

어머니여!

당신은 나의 처음이요

마지막 음악이십니다.

 

나의 태를 끊으시고 매듭지으실 적부터

인간과 접촉시켜 놓으신

운명의 주인이십니다.

 

웃음과 아픔의 역겨움이

당신의 품안에서 화합하였을 때

나의 生은 걸음마를 타며

당신의 눈을 쳐다 봤습니다.

 

눈은 서러운 타향살이로 그슬린

생활의 그런 눈은 아니었습니다.

하늘의 긴 얘기를 품은

움직이는 신비 그것이었습니다.

 


 

 

 모윤숙(毛允淑) 시인 / 1910년-1990년

호는 영운(嶺雲). 1910년 함경남도 원산(元山)에서 태어나 함흥에서 자랐다. 1931년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1935년 경성제국대학 영문과 선과(選科)를 수료. 그뒤 월간 《삼천리(三千里)》와 중앙방송국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였고, 1933년 첫 시집 《빛나는 지역》, 1937년 장편 산문집 《렌의 애가》를 출간하였다.  8.15광복 뒤에는 문단과 정계에서 폭넓은 활동을 전개해, 1948년에는 월간문예지《문예》를 발간하는 한편, 1948·1949년에는 국제연합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1950년 대한여자청년단장, 1954년 한국펜클럽 부회장, 195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강사 및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을 거쳐 1957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71년 8대국회에 민주공화당 전국구 대표로 당선되었고, 이후 한국현대시인협회장(1973), 통일원 고문(1974), 펜클럽 한국본부 회장(1977), 문학진흥재단 이사장(1980)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모란장, 예술원상, 3·1문화상 등을 받았고, 저서에는 《모윤숙 전집》《논개》《렌의 애가》 등이 있다. 1967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1970), 1979년 3·1문화상을 받았고, 1991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