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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오일도 시인 / 저녁 놀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7.

오일도 시인 / 저녁 놀

 

 

작은 방 안에

장미를 피우려다 장미는 못 피우고

저녁놀 타고

나는 간다.

 

모가지 앞은 잊어 버려라.

하늘 저편으로

둥둥 떠 가는

저녁 놀!

 

이 우주에

저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랴.

저녁놀 타고

나는 간다.

 

붉은 꽃밭 속으로----

붉은 꿈나라로----

 

 


 

 

오일도 시인 / 코스모스꽃

 

 

가을볕 엷게 내리는 울타리 가에

쓸쓸히 웃는 코스모스꽃이여!

 

너의 전원이 기른

청조한 여시인(女詩人)

 

남달리 심벽(深僻)한 곳, 늦 피는 성격을 가졌으며

세상의 영예는 저 구름 밖에 멀었나니.

 

 


 

 

오일도 시인 / 검은 구름

 

 

높이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가슴 한복판을 누린다.

 

내 무슨 죄로

두 손 가슴에 얹고 반듯이 침대에 누워

취행 시간을 기다리느뇨.

 

그러나 모두 우습다.

그러나 모두 무(無)다.

 

눈만 달아 벌레 먹은 육체, 내려다 볼 때에

인생은 결국 동물의 한 현상이어니,

 

백년도 그렇고.....

천 년도 그렇고.....

 

내 한 가지 희원(希願)은

나 간 후

뉘어칠 것도 꺼릴 것도 아무것도 없게 하라.

 

 


 

 

오일도 시인 / 5월 화단

 

 

5월의 더딘 해 고요히 내리는 화단.

하루의 정열도

파김치 같이 시들다.

바람아, 네 이파리 하나 흔들 힘 없니!

 

어두운 풀 사이로

월계의 꽃조각이 환각(幻覺) 에 가물거리다.

 

 


 

 

오일도(吳一島) 시인

본관은 낙안(樂安). 본명은 오희병(吳熙秉). 아호는 일도. 경상북도 영양 출신. 14세까지 향리의 사숙(私塾)에서 한문 공부를 한 뒤, 1915년 15세에 결혼. 그 뒤 1918년 영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京城第一高等普通學校)에 입학하였으나 졸업하지 않았다. 1922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강습소에서 수학한 다음 릿쿄대학[立敎大學] 철학부에 입학하여 1929년 졸업. 귀국 후 1년 동안 덕성여자중고등학교의 전신인 근화학교(槿花學校)에서 무보수 교사로 근무하다 1935년 2월

 시 전문잡지 『시원(詩苑)』을 창간하였다. 이 잡지는 1935년 12월 5호를 내고 발행이 중단되었다. 그의 작품 활동은 1925년 『조선문단(朝鮮文壇)』 4호에 시 「한가람백사장에서」를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전개한 것은 『시원』을 창간하면서부터였는데, 여기에 「노변(爐邊)의 애가(哀歌)」·「눈이여! 어서 내려다오」·「창을 남쪽으로」·「누른 포도잎」·「벽서(壁書)」·「내 연인이여!」 등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