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 시인 / 헌시(獻詩) 부제 : 조선청년단체총동맹(朝鮮靑年團體總同盟) 결성(結成) 대회(大會)에
죽어도 썩지 않을 하나를 지닌 가슴과 가슴은 공처럼 부풀어 드는 손 마디 마디 맺힌 피 발을 구르면 따뜻이 흘러내려 너른 회장(會場)은 온전히 한 심장(心臟)
여기 인민공화국(人民共和國)의 수도(首都)가 있다 노래에도 연설(演說)에도 이미 살길은 명백(明白)하고 우리는 단지 죽는 법을 배워 돌아가면 그만이다.
찬가, 백양당, 1947
임화 시인 / 홍수 뒤
하나도 아니었고, 둘도 아니었다.
활개를 젓고 건너가, 죽지를 늘이고 돌아온 이 항구의 추억은, 참말 열도 아니었다.
그러나 굳건하던 작고 큰 집들이 터문도 없이 휩쓸려간 홍수 뒤, 황무지의 밤바람은 너무도 맵고 거칠어.
언제인가 하루 아침, 맑은 희망의 나발이었던 고동소린 오늘밤, 청춘의 구슬픈 매장의 노래 같아야, 고향의 부두를 밟는 나의 무릎은 얼듯 차다.
긴 밤차가 닿는 곳, 나의 벗들을 사로잡은 차디 찬 운명 속에서도, 청년의 자랑은 꺼지지 않는 등촉처럼 밝았으면……
아아 이 하나로 나는 평생의 보배를 삼으련다.
현해탄, 동광당서점, 1938
임화 시인 / 황무지(荒蕪地)
도망해 나온 시골 어머니가 밤마다 머리맡에 울더라만, 끝내 나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늙고 병들어 벌써 땅에 묻혔다. 그래야 나는 산소가 어디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도, 고향도, 나에게는 소용 없었다. 나는 젊은 청년이다…….
자랑이 가슴에 그뜩하여, 배가 부산 부두를 떠날 때도, 고동소리가 나팔처럼 우렁만 찼다.
어느 한구석 눈물이 있을 리 없어, 그 자리에 내 좋아하는 누이나 연인이 죽는대도, 왼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강을 건너는 내 마음은, 웬일인지 소년처럼 흔들리고 있다.
차가 철교를 건너는 소리가 요란이야 하다, 그렇지만 엎어지려는 뱃간에서도, 나는 무릎 한 번 안 굽혔다.
대체 네가 무엇이기에, 아아! 메마른 들 헐벗은 산, 그다지도 너는 내게 가까왔던가!
벌써 강판은 얼어, 너른 구포벌엔 황토 한 점 안 보인다.
눈발이 부연 하늘 아래, 나는 기차를 타고 추풍령을 넘어, 서울로 간다. 서울은 나의 고향에서도 천리, 다만 나의 어깨의 짐을 풀 곳일 따름이다.
자꾸만 차창을 흔드는 바람 소린, 슬픈 자장가일까? 아픈 신음소릴까? ―아이들을 기르고 어머니를 죽인,
아아! 오막들도 전보다 얕아지고, 인제 밤에는 호롱불 하나이 없이 산단구나.
황무지여! 황무지여! 너는 아는가? 청년들이 어떤 열차를 탔는가를…….
현해탄, 동광당서점, 1938
|
'◇ 시인과 시(근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광균 시인 / UN군 묘지에서 외 4편 (0) | 2019.08.08 |
---|---|
윤곤강 시인 / 단사(丹蛇) 외 4편 (0) | 2019.08.08 |
오일도 시인 / 저녁 놀 외 3편 (0) | 2019.08.07 |
양주동 시인 / 해곡(海曲)3장 외 4편 (0) | 2019.08.07 |
임화 시인 / 하늘 외 2편 (0) | 2019.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