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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이은상 시인 / 가고파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11.

이은상 시인 / 가고파

 

 

내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린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어울려 옛날같이 살고지라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이은상 시인 /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

너는 지금 어디 있나

누더기 한폭 걸치고

토막(土幕) 속에 누워 있나

네 소원 이룰 길 없어

네 거리를 헤매나.

 

오는 아침도 수없이 떠나가는 봇짐들

어디론지 살 길을 찾아 헤매는 무리들일랑

그 속에 너도 섞여서

앞선 마루를 넘어갔다.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

낙조보다도 더 쓸쓸한 조국아

 

긴긴 밤 가얏고 소리마냥

가슴을 파고드는 네 이름아

새 봄날 도리화(桃李花)같이

활짝 한번 피워 주렴.

 

 


 

 

이은상 시인 / 심산 풍경

 

 

도토리, 서리나무 썩고 마른 고목 등걸,

천 년 비바람에 뼈만 앙상 남았어도,

역사는 내가 아느니라 교만스레 누웠다.

 

풋나기 어린 나무 저라서 우줄대도

숨기신 깊은 뜻이야 나 아니고 누가 알랴.

다람쥐 줄을 태우고 교만스레 누웠다.

 

 


 

 

이은상 시인 / 단풍 한 잎

 

 

단풍 한 잎사귀 손에 얼른 받으오니

그대로 내 눈 앞에 서리치는 풍악산을

잠긴 양 마음이 뜬 줄 너로 하여 알겠구나.

 

새 빨간 이 한 잎을 자세이 바라보매

풍림(楓林)에 불 태우고 넘는 석양같이 뵈네

가을 밤 궂은 비소리도 귀에 아니 들리는가.

 

여기가 오실 덴가 바람이 지옵거든

진주담 맑은 물에 떠서 흘러 흐르다가

그산중 밀리는 냇가에서 고이 살아 지올 것을.

 

 


 

 

이은상 시인 / 금강 귀로(金剛歸路)

  

           

금강(金剛)이 무엇이뇨 돌이요 물이로다

돌이요 물일러니 안개요 구름일러라

안개요 구름이어니 있고 없고 하더라

금강(金剛)이 어드메뇨 동해(東海)의 가이로다

갈 제는 거길러니 올 제는 흉중(胸中)에 있네

라라라 이대로 지켜 함께 늙자 하노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李殷相) 시인 / 1903∼1982

시조 시인. 호는 노산(鷺山). 경남 마산에서 출생. 마산 사립 창신 학교 고등과를 나와 1923년에 연희 전문 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에 유학, 와세다 대학 사학과에서 수업하였다. 그 후 월간지 <신생>을 편집했고, 1931년에 이화 여전 교수가 되었다. 광복 후 <호남 신문>사장과 서울대, 영남대 교수등을 지냈고, 1954년에는 예술원 회원에 선임되었다. 그 후 충무공 이순신 장군 기념 사업 회장, 민족 문화 협회장, 안중근 의사 숭모회장, 시조 작가 협회장 및 숙명 여대 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4년에 노산 시조 문학상을 제정하였고, 1981년에 국정 자문 위원에 위촉되었다. [봄처녀] [옛동산에 올라] [가고파]등으로 고유한 전통의 시 형식인 시조의 현대화에 기여하였고, 1932년에 간행된 <노산 시조집>은 1920년대의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의 시조 부흥론에 의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의 저서에는 <이충무공 일대기> <민족의 향기>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