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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이병기 시인 / 고향으로 돌아가자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11.

이병기 시인 / 고향으로 돌아가자

 

 

   고향으로 돌아가자,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암 데나 정들면 못 살 리 없으련마는,

   그래도 나의 고향이 아니 가장 그리운가.

 

   방과 곳간들이 모두 잿더미 되고,

   장독대마다 질그릇 조각만 남았으나,

   게다가 움이라도 묻고 다시 살아봅시다.

 

   삼베 무명 옷 입고 손마다 괭이 잡고,

   묵은 그 밭을 파고 파고 일구고,

   그 흙을 새로 걸구어 심고 걷고 합시다.


가람문선, 신구문화사, 1966

 

 


 

 

이병기 시인 / 창(窓)

 

 

   우리 방으로는 창(窓)으로 눈을 삼았다.

   종이 한 장으로 우주(宇宙)를 가렸지만

   영원히 태양과 함께 밝을대로 밝는다.

 

   너의 앞에서는 술 먹기도 두렵다.

   너의 앞에서는 참선(參禪)키도 어렵다.

   진귀한 고서(古書)를 펴서 서항기(書港氣)나 기를까.

 

   나의 추(醜)와 미(美) 도 네가 가장 잘 알리라.


   나의 고(苦)와 낙(樂)도 네가 가장 잘 알리라


   그러나 나의 임종(臨終)도 네 앞에서 하려 한다

 

가람문선, 신구문화사, 1966


 

 


 

 

이병기 시인 / 젖

 

 

   나의 무릎을 베고 마지막 누우시던 날

   쓰린 괴로움을 말도 차마 못하시고

   매었던 옷고름 풀고 가슴 내어 뵈더이다.

 

   까만 젖꼭지는 옛날과 같으오이다.

   나와 나의 동기 어리던 팔구 남매

   따뜻한 품 안에 안겨 이 젖 물고 크더이다.


가람시조집, 문장사, 1939

 

 


 

 

이병기 시인 / 박연 폭포

 

 

이제 산에 드니 산에 정이 드는구나.

오르고 내리는 길 괴로움을 다 모르고,

저절로 산인(山人)이 되어 비도 맞아 가노라.

 

이 골 저 골 물을 건너고 또 건너니,

발 밑에 우는 폭포 백이요 천이러니,

박연을 이르고 보니 하나밖에 없어라.

 

봉머리 이는 구름 바람에 다 날리고,

바위에 새긴 글발 메이고 이지러지고,

다만, 이 흐르던 물이 그ㅊ지 아니하도다 

 

< 가람시조집>1939.

 

 


 

이병기(李秉岐) 시인 / 1891∼1968

호: 가람(伽藍). 시조 시인. 국문학자. 전북 익산에서 출생. 1913년에 관립 한성 사범 학교를 졸업하고, 보통 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고문헌 수집과 시조 연구에 전념하였다.1921년에 조선어 연구회를 조직하였고, 1926년에 <시조란 무엇인가>를 발표한 이래 현대 감각의 시조로 침체된 시조 문학을 크게 일으켰다. 1930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위원을 거쳐 1935년에는 조선어 표준어 사정 위원이 되었고, 그 후에<가람 시조집>을 발표, 자연의 생생한 묘사를 통하여 현대 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1942년에는<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수감되어 1년여 동안 복역하다가 석방된 후 귀향하여 농업에 종사하면서 고문헌 연구에 몰두하였다. 광복 후 상경하여 미군정청 편찬과장, 서울 대학교 문리과 대학 교수 등을 거쳐 1954년에는 학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그 해 백철과 공저

로 <국문학 전사>를 간행하였다. 그는 현대 자유시에 압도된 시조의 부흥에 큰 공헌을 하였고, 저서에는 <국문학 개론> <가람 문선>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