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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정훈 시인 / 밀고 끌고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16.

정훈 시인 / 밀고 끌고

 

 

날랑 앞에서 끌게 엄닐랑 뒤에서 미세요.

한 밭 사십리길 쉬엄쉬엄 가셔요.

밀다가 지치시면 손만 얹고 오셔요.

걱정말고 오셔요. 발소리 만 내셔요.

엄니만 따라오면 힘이 절로 난대요.

마늘 팔고 갈 제면 콧노래도 부를께요.

형은 총을 들고 저는 손수레의 채를 잡고.

형이 올 때까지 구김없이 살아요.

엄닐랑 뒤에서 걸어만 오셔요.

절랑 앞에서 끌께요.

우리의 거센길을 밀고 끌고 가셔요.

 

 


 

 

정훈 시인 / 머들령

 

 

요강원을 지나

머들령.

 

옛날 이 길로 원님이 나리고......

등심장사가 쉬어 넘고

도둑이 목 축이던 곳

 

분홍 두루막에

남빛 돌띠 두르고

할아버지와 이 재를 넘었다.

 

뽀꾸기 자꾸 우던 날

감장 개명화에 발이 부르트고

 

파랑 갑사댕기

손에 감고 울었더니

 

흘러간 서른 핸데

유월 하늘에 슬픔이 어린다.

 

*머들령-고개 이름. 정식명칭 : 마달령. 검한리와 장산리 사이 (요광1리 요광3리 사이). 한밭과 한양으로 가는 유일한 재로 유명하다.

 

<< 자오선 창간호 1937.11호에 수록>>

 

 


 

 

정훈 시인 / 머얼리

 

 

깊은 산허리에

자그만 집을 짓자.

 

텃밭엘랑

고추

둘레에도 돔부도 심자.

 

박꽃이

희게 핀 황혼이면

먼 구름을 바라보자.

 

 


 

정훈(丁薰) 시인 (1911-1992)

호는 소정(素汀). 정훈 시인은 1911년 3월 16일 충남 논산군 연산면 인내리에서 태어나 일찍이 8살 때 부친을 여의고, 한의학자였던 조부 대현(大鉉)과 편모 슬하에서 7대 독자로 자랐다. 어려서부터 조부에게 한문을 배우고 인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5학년까지 다니다가 조부가 대전으로 이주하여 은행동 목척교 부근에서 살았던 연유로 대전 삼성보통학교 3학년에 전입하여 졸업하고 1933년 휘문고보를 거쳐 1940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문과에서 수학하다 대동아 전쟁으로 귀국했다.

 그 후 학교 법인 호서(湖西)재단을 설립하여 호서중학교장(1946~1959) 및 호서대학장(1950~1955)을 지냈으며 대전시 중구 대흥동에서 혜남한약방(惠南漢藥方)을 경영하면서 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1940년 <카톨릭 청년>지에 「머들령」을 발표하고 등단한 이후 자유시와 시조창작에 전념하면서 시집 「머들령」(1949), 「破笛」(1954), 「피맺힌 年輪」(1958),「散調」(1966), 시선집 「丁薰詩選」(1973),「巨木」(1979)을, 시조집「碧梧桐」(1955),「꽃詩帖」(1960) 등을 발간하였다. 1992년 8월 2일 82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