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 시인 / 밀고 끌고
날랑 앞에서 끌게 엄닐랑 뒤에서 미세요. 한 밭 사십리길 쉬엄쉬엄 가셔요. 밀다가 지치시면 손만 얹고 오셔요. 걱정말고 오셔요. 발소리 만 내셔요. 엄니만 따라오면 힘이 절로 난대요. 마늘 팔고 갈 제면 콧노래도 부를께요. 형은 총을 들고 저는 손수레의 채를 잡고. 형이 올 때까지 구김없이 살아요. 엄닐랑 뒤에서 걸어만 오셔요. 절랑 앞에서 끌께요. 우리의 거센길을 밀고 끌고 가셔요.
정훈 시인 / 머들령
요강원을 지나 머들령.
옛날 이 길로 원님이 나리고...... 등심장사가 쉬어 넘고 도둑이 목 축이던 곳
분홍 두루막에 남빛 돌띠 두르고 할아버지와 이 재를 넘었다.
뽀꾸기 자꾸 우던 날 감장 개명화에 발이 부르트고
파랑 갑사댕기 손에 감고 울었더니
흘러간 서른 핸데 유월 하늘에 슬픔이 어린다.
*머들령-고개 이름. 정식명칭 : 마달령. 검한리와 장산리 사이 (요광1리 요광3리 사이). 한밭과 한양으로 가는 유일한 재로 유명하다.
<< 자오선 창간호 1937.11호에 수록>>
정훈 시인 / 머얼리
깊은 산허리에 자그만 집을 짓자.
텃밭엘랑 파 고추 둘레에도 돔부도 심자.
박꽃이 희게 핀 황혼이면 먼 구름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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