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모 시인 / 어머니 1
어머니 지금은 피골만이신 당신의 젖가슴 그러나 내가 물고 자란 젖꼭지만은 지금도 생명의 샘꼭지처럼 소담하고 눈부십니다.
어머니 내 한 뼘 손바닥 안에도 모자라는 당신의 앞가슴 그러나 나의 손자들의 가슴 모두 합쳐도 넓고 깊으신 당신의 가슴을 따를 수 없습니다.
어머니 새다리같이 뼈만이신 당신의 두 다리 그러나 팔십 년 긴 역정(歷程) 강철의 다리로 걸어오시고 아직도 우리집 기둥으로 튼튼히 서 계십니다. 어머니!
-시집 <새벽>(1975)-
정한모 시인 / 어머니·6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그 동그란 광택(光澤)의 씨를 아들들의 가슴에 심어 주신다.
씨앗은 아들들의 가슴속에서 벅찬 자랑 젖어드는 그리움
때로는 저린 아픔으로 자라나 드디어 눈이 부신 진주가 된다. 태양이 된다.
검은 손이여 암흑이 광명을 몰아내듯이 눈부신 태양을 빛을 잃은 진주로 진주로 다시 쓰린 눈물로 눈물을 아예 맹물로 만들려는 검은 손이여 사라져라.
어머니는 오늘도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시집<새벽>1975
정한모 시인 / 새벽 1
새벽은 새벽을 예감(豫感)하는 눈에게만 빛이 된다.
새벽은 홰를 치는 첫닭의 울음소리도 되고 느리고 맑은 외양간의 쇠방울 소리 어둠을 찢어 대는 참새 소리도 되고 교회당(敎會堂)의 종(鐘)소리 시동(始動)하는 액셀러레이터 소리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도 되어 울려 퍼지지만
빛은 새벽을 예감(豫感)하는 눈에게만 화살처럼 전광(電光)처럼 달려와 박히는 빛이 된다. 새벽이 된다.
빛은 바다의 물결 위에 실려 일렁이며 뭍으로 밀려오고 능선(稜線)을 따라 물들며 골짜기를 채우고 용마루 위 미루나무 가지 끝에서부터 퍼져 내려와 누워 뒹구는 밤의 잔해(殘骸)들을 쓸어 내며 아침이 되고 낮이 되지만
새벽을 예감하는 눈에겐 새벽은 어둠 속에서도 빛이 되고 소리나기 이전(以前)의 생명이 되어 혼돈(混沌)의 숲을 갈라 한 줄기 길을 열고 두꺼운 암흑(暗黑)의 벽(壁)에 섬광(閃光)을 모아 빛의 구멍을 뚫는다.
그리하여 새벽을 예감하는 눈만이 빛이 된다. 새벽이 된다. 스스로 빛을 내뿜어 어둠을 몰아내는 광원(光源)이 된다.
-<새벽>(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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