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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정인보 시인 / 자모사(慈母思)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15.

정인보 시인 / 자모사(慈母思)

 

 

1

가을은 그 가을이 바람불고 잎 드는데

가신 님 어이하여 돌오실 줄 모르는가

살뜰히 기르신 아이 옷 품 준 줄 아소서

 

2

부른 배 골리보고 나은 얼굴 병만 여겨

하루도 열두 시로 곧 어떨까 하시더니

밤송인 쭉으렁*인 채 그지 달려 삽내다

 

3

동창에 해는 뜨나 님 계실 때 아니로다

이 설움 오늘날을 알았드면 저즘미리

먹은 맘 다 된다기로 앞 떠날 줄 있으리

 

4

차마 님의 낯을 흙으로 가리단 말

우굿이* 어겼으니 무정할 손 추초(秋草)로다

밤 이여 꿈에 뵈오니 편안이나 하신가

 

2 * 쭉으렁-우리 속담에 쭉으렁 밤송이 삼년 달린다는 말이 있다. 다병(多病)한 사람이  그대로 부지하는 것을  이에 견주어 말하며  못 생기고  오래 사는 것을  이에 견주어 말한다.

4 * 우굿이-茂盛한 모양

 

5

반갑던 님의 글월 설움될 줄 알았으리

줄줄이 흐르는 정 상기 아니 말랐도다

받들어 낯에 대이니 배이는 듯하여라

 

6

므가나* 나를 고히 보심 생각하면 되 서워라

내 양자*(樣子) 그대로를 님이 아니 못보심가

내 없어 네 미워진 줄 어이 네가 알것가

 

7

눈 한번 감으시니 내 일생이 다 덮여라

질* 보아 가련하니 님의 속이 어떠시리

자던 닭 나래쳐 울면 이때리니 하여라

 

8

체수는 적으셔도 목소리는 크시더니

이 없어 옴으신 입 주름마다 귀엽더니

굽으신 마른 허리에 부지런히 뵈더니

 

6 * 므가나 : 미운

6 * 양자 : 모양

7 * 질 : 저를, 나를

 

9

생각도 어지럴사 뒤먼저도 바없고야

쓰다간 눈물이요 쓰고 나니 한숨이라

행여나 님 들으실까 나가 외워 봅니다

 

10

미닫이 닫히었나 열고 내다보시는가

중문 턱 바삐 넘어 앞 안 보고 걸었더니

다친 팔 도진다마는 님은 어대 가신고

 

11

젖 잃은 어린 손녀 손에 끼고 등에 길러

색시꼴 백여가니 눈에 오즉 밟히실가

봉사*도 님 따라간지 아니 든다 웁내다

 

12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되고 말어라

 

11 * 봉사-봉선화의 와(訛), 소녀들이 봉선화를 짓찧어서 손톱에 홍색을 들이니 이를 봉사들인다고 한다.

12 * 바릿밥-바리(놋쇠로 만든 여자의 밥그릇)에 담아 둔 밥. 놋그릇에 담은  따뜻한 밥은  남에게 주시고 어머니는 늘 찬밥을 잡수셨다는 뜻으로,  어머니의 희생적 자애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12 * 보공-사람이 죽은 뒤에 관의 빈 곳을 채우는 옷. 겨울에는  솜치마 좋다고  하시면서도  그것을 아끼시느라 입지 않으시더니, 끝내 그 솜치마는 돌아가신 뒤에 관의 빈 곳을 채우는 옷이 되고 말았다는 뜻이다. 어머니의 근검한 생활 태도와 그에 대한  시적 자아의 안타까움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13

썩이신 님의 속을 깊이 알 이 뉘 있스리

다만지 하루라도 웃음 한번 도읍과저

이저리 쓰옵던 애가 한 꿈되고 말아라

 

14

그리워 하 그리워 님의 신색 하 그리워

닮을 이 뉘 없으니 어딜 향해 찾으오리

남으니 두어 줄 눈물 어려 캄캄하고녀

 

15

불현듯 나는 생각 내가 어이 이러한고

말 갈 데 소 갈 데로 잊은 듯이 열흘 달포

설움도 팔자 없으니 더욱 느껴 합내다

 

16

안방에 불 비치면 하마 님이 계시온 듯

닫힌 창 바삐 열고 몇 번이나 울었던고

산 속에 추위 이르니 님을 어이 하올고

 

17

밤중만 어매 그늘 세 번이나 나린다네*

게서 자라날 제 어인 줄을 몰랐고여

님의 공 깨닫고 보니 님은 벌써 머셔라

 

18

태양이 더웁다 해도 님께 대면 미지근타

구십춘광(九十春光)이 한 웃음에 퍼지서라

멀찌기 아득케나마 바랄 날이 언제뇨

 

19

어머니 부르올 제 일만 있어 부르리까

젖먹이 우리 애기 왜 또 찾나 하시더니

황천(黃泉)이 아득하건만 혼자 불러 봅내다

 

20

연긴가 구름인가 옛일 벌써 희미(熹微)해라

눈감아 뵈오려니 떠오느니 딴 낯이라

남없는 거룩한 복이 언제런지 몰라라

 

17 * 밤중만 어매 그늘 세 번이나 나린다네-아이가 잘 때에도  어미의 이슬( 어머니의 눈물,  정성, 사랑)이 세 번 내린다’라는  속신(俗信)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어머니의  끊임 없는  정성을  인유적(引誘的)으로 서술하고 있다.

 

21

등불은 어이 밝아 바람조차 부는고야

옷자락 날개 삼아 훨훨 중천 나르과저

이윽고 비소리나니 잠 못 이뤄 하노라

 

22

풍상(風霜)도 나름이라 설움이면 다 설움가

오십년 님의 살림 눈물인들 남을 것가

이저다* 꿈이라시고 내 키만을 보서라

 

23

북단재 뾰죽집*이 전에 우리 외가(外家)라고

자라신 경눗골*에 밤동산은 어디런가

님 눈에 비취던 무산* 그저 열둘이려니

 

24

목천(木川)집 안방인데 누우신 양 병중이라

손으로 머리 짚자 님을 따라 서울길로

나다려 말씀하실 젠 진천인 듯하여라

 

22 * 이저다 : 이것 저것 모두

23 * 뾰죽집 : 천주교당(天主敎堂)의 속어

23 * 경눗골 : 정릉동(貞陵洞)

23 * 무산 : 巫山十二峰

 

25

뵈온 배 꿈이온가 꿈이 아니 생시런가

이 날이 한 꿈되어 소스라쳐 깨우과저

긴 세월 가진 설움 맘껏 하소 하리라

 

26

시식(時食)도 좋건마는 님께 드려 보올 것가

악마듸* 풋저림을 이 없을 때 잡숫더니

가지록 뼈아풉내다 한(恨)이라만 하리까

 

27

가까이 곁에 가면 말로 못할 무슨 냄새

마시어 배부른 듯 몸에 품겨 봄이온 듯

코끝에 하마 남은가 때때 맡아 봅내다

 

28

님 분명 계실 것이 여기 내가 있도소니

내 분명 같을 것이 님 가신지 네 해로다

두 분명 다 허사외라 뵈와 분명하온가

 

26 * 악마듸 : 억세인 것, 억센

 

29

친구들 나를 일러 집안 일에 범연타고

아내는 서워라고 어린아이 맛없다고

여린 맘 설움에 찢겨 어대 간지 몰라라

 

30

집터야 물을 것가 어느 무엇 꿈아니리

한 깊은 저 남산이 님 보시던 옛 낯이라

게섰자 눈물이리만 외오 보니 설워라

 

31

비 잠깐 산 씻더니 서릿김에 내 맑아라

열구름 뜨자마자 그조차도 불어 없다

맘 선뜻 반가워지니 님 뵈온 듯하여라

 

32

마흔의 외둥이를 응아하자 맏동서께

남없는 자애렸만 정 갈릴가 참으셨네

이 어찌 범절만이료 지덕(至德)인 줄 압내다

 

33

찬 서리 어린 칼을 의로 죽자 내 잡으면

분명코 우리 님이 나를 아니 붙드시리

가서도 계신 듯하니 한 걸음을 긔리까*

 

34

어느 해 헛소문에 놀라시고 급한 편지

네 걸음 헛디디면 모자 다시 안 본다고

지질한 그날 그날을 뜻 받았다 하리오

 

35

백봉황(白鳳凰) 깃을 부쳐 도솔천궁 향하실 제

아득한 구름 한점 옛 강산이 저기로다

빗방울 오동에 드니 눈물 아니 지신가

 

36

엽둔재 높은 고개 눈바람도 경이랏다

가마 뒤 잦은 걸음 얘기 어이 그쳤으리

주막집 어둔 등잔이 맛본상*을 비춰라

 

33 * 긔리까 : 만과(瞞過), 속여 넘김

36 * 맛본상 : 겸상으로 보아 놓은 밥상

 

37

이 강이 어느 강가 압록(鴨綠)이라 엿자오니

고국산천이 새로이 설워라고*

치마끈 드시려 하자 눈물 벌써 굴러라

 

38

개울가 버들개지 바람 따라 휘날린다

행여나 저러할라 돌이고도 굴지 마라

이 말씀 지켰다한들 누를 향해 사뢸고

 

39

이만 사실 님을 뜻조차도 못받든가

한번 상해드려 못내 산 채 억만년을

이제와 뉘우치란들 님이 다시 오시랴

 

40

설워라 설워라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

무덤풀 욱은* 오늘 이 살붙어 있단 말가

빈 말로 설운 양함을 뉘나 믿지 마옵소*

 

37 * 고국산천이 새로이 설워라고'-새삼 고국 생각이 나서 서럽다고 하시고 ’ 의 뜻으로 고국을 떠나 유랑민이 된 설움이 새삼 복받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40 * 설워라 설워라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어버이의 사랑이 자식의 어버이에 대한 사랑보다 크다

40 * 욱은 : 우거진, 어머님 묻히신 곳에 풀이 우거진 오늘날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바쁜 일상 생활에 찌들려 어머님 생전에 효도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돌아가신 후에야 뼈저리게 뉘우침을 표현한 것이다

40 * 빈 말로 설운 양함을 뉘나 믿지 마옵소-전체를 요약하는 성격의 장, 어머니 생전에 효를 다하지 못한, 그리고 후일의 효마저 겉모습만을 보이는 자식으로서의 회한을 노래 (풍수지탄)

 

- <신생>(1925) -

 

 


 

 

자모사의 배경

작자에게는 생모(生母-대구 서씨)와 양모(養母-양자로 간 집, 월성 이씨)의 두 어머니가 계셨는데 두 어머니가 다 숙덕(淑德)이 장하고 자애(慈愛)가 깊었다고 한다. 이 시조는 두 분이 다 돌아가신 후에 쓴  작품이며,  이 시조에서 읊어지는  어머니는 그 중 어느 한 분만을 대상으로 하지않고 어느 분이나 생각나는 대로 한 수씩 지어 나간 것이다. 자모사에 붙인 그의 해제에서 ‘생어머니는 높고 양어머니는 크다 ··· 어머니 한 분을 먼저 여읜 뒤는, 한 분머저 여의면  나는 부지하지 못할 줄로 알았다. 그러다가 목천서 어머니 상사(喪事)를 당했다. ··· 그 가을에 서울로 이사하여 오니 갈수록 서러워 길 가다가도 가끔 혼자 울었다. 이 시조는 병인년 가을에 지었다.’라고 자모사의 창작 배경을 밝히고 있다.

 

 


 

 

 정인보(鄭寅普) 시인 / 1892∼1950

학자. 호는 위당(爲堂). 서울에서 출생. 1910년 중국에 건너가 동양학을 공부하면서 신규식, 박은식 등과 함께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여 독립 운동을 벌이는 한편, 교포 계몽에 힘썼다. 1918년에 귀국한 후 연희 전문 학교, 이화 여자 전문 학교, 중앙 불교 전문 학교 등에서 국학과 동양학을 강의하였고, <시대 일보> <동아 일보>등의 논설 위원으로 총독부의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1948년 국학 대학장을 거쳐 초대 감찰 위원장이 되었으나, 6.25남침때 납북되었다. 시조, 한시에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주요 저서에 <조선사 연구> <조선 문화 원류고> > <담원 시조집>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