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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정인보 시인 / 근화사 삼첩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14.

정인보 시인 / 근화사 삼첩

 

 

신시(神市)로 내린 우로(雨路)꽃 점진*들 없을쏘냐?

왕검성(王儉城) 첫 봄 빛에 피라시니 무궁화(無窮花)를

지금도 너곧 대(對)하면 그제런듯 하여라.

 

저 메는 높고 높고 저 가람은 예고 예고,

피고 또 피오시니 번으로써 세오리까?

천만 년(千萬年) 무궁(無窮)한 빛을 길이 뵐까 하노라.

 

담우숙 유한(幽閑)ㅎ고나, 모여 핀 양 의초롭다.

태평연월(太平烟月)이 둥두렷이 돋아올 제,

옛 향기(香氣) 일시(一時)에 도니 강산화려(江山華麗)하여라.


담원시조, 을유문화사, 1948

 

 


 

 

정인보 시인 / 조춘(早春)

 

 

그럴싸 그러한지 솔빛 벌써 더 푸르다.

산골에 남은 눈이 다산 듯이 보이고녀.

토담집 고치는 소리 볕발 아래 들려라.

 

나는 듯 숨은 소리 못 듣는다 없을 쏜가.

돋으려 터지려고 곳곳마다 움직이리.

나비야 하마 알련만 날기 어이 더딘고.

 

이른 봄 고운 자취 어디 아니 미치리까?

내 생각 엉기을 젠 가던 구름 머무나니,

든 붓대 무능ㅎ다 말고 헤쳐 본들 어떠리.


담원시조, 을유문화사, 1948

 

 


 

 

정인보 시인 / 어머니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ㅎ기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 되고 말아라

 

이 강이 어느 강가, 압록이라 여짜오니

고국 산천이 새로이 설워라고

치마끈 드시려 하자 눈물 벌써 굴러라

 

설워라 설워라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

무덤풀 욱은 오늘이 '살'부터 있단 말가

빈말로 설운 양함을 뉘나 믿지 마옵소.

 

 


 

 

 정인보(鄭寅普) 시인 / 1892∼1950

학자. 호는 위당(爲堂). 서울에서 출생. 1910년 중국에 건너가 동양학을 공부하면서 신규식, 박은식 등과 함께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여 독립 운동을 벌이는 한편, 교포 계몽에 힘썼다. 1918년에 귀국한 후 연희 전문 학교, 이화 여자 전문 학교, 중앙 불교 전문 학교 등에서 국학과 동양학을 강의하였고, <시대 일보> <동아 일보>등의 논설 위원으로 총독부의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1948년 국학 대학장을 거쳐 초대 감찰 위원장이 되었으나, 6.25남침때 납북되었다. 시조, 한시에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주요 저서에 <조선사 연구> <조선 문화 원류고> > <담원 시조집>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