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시인 / 신년사(新年詩)
흰 구름 뜨고 바람 부는 맑은 겨울 찬 하늘 그 無限을 우러러보며 서 있는 大地의 나무들처럼 오는 새해는 너와 나, 우리에게 그렇게 꿈으로 가득하여라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영원한 日月의 영원한 이 回轉 속에서 너와 나, 우리는 約束된 旅路를 동행하는 有限한 生命 오는 새해는 너와 나, 우리에게 그렇게 사랑으로 더욱더 가까이 이어져라
조병화 시인 / 회로
혹시나 그대를 만날까 하고 그대 머리카락이 스치던 거리로 가노라
나는 또다시 실망하노라
텅빈 공간에 그대와 같은 명사는 잃고 우거진 군상 속에 나만이 이단처럼 걸어가노라
아 나는 아노라 행복으로 돌아가는 모든 순서를 아노라 삶의 그러한 인습을 아노라
오랜 어버이들이 맺어온 理性의 그것이 생명이 넘치는 비극의 종막에 서서 고집의 소리가 이미 허세함을 아노라
나는 모든 금지 구역을 또다시 걸어가노라
명일에 연속하는 나의 슬픔은 그대 것이요, 그대 슬픔을 걸어가며 나는 행복하노라 그대 머리카락이 스치던 거리로 걸어가며 나는 또다시 행복하노라
조병화 시인 / 혼자라는 거
밤 2시경 잠이 깨서 불을 켜면 온 세상 보이는 거, 들리는 거 나 혼자다
이렇게 철저하게 갇혀 있을 수가 있을까
첩첩한 어둠의 바닥
조물주는 마지막에 있어 누구에게나 이렇게 잔인한 거
사랑하는 사람아 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아
조병화 시인 / 호수
물이 모여서 이야길 한다 물이 모여서 장을 본다 물이 모여서 길을 묻는다 물이 모여서 떠날 차빌 한다
당일로 떠나는 물이 있다 며칠을 묵는 물이 있다 달폴 두고 빙빙 도는 물이 있다 한여름 길을 찾는 물이 있다
달이 지나고 별이 솟고 풀벌레 찌 찌
밤을 새우는 물이 있다 뜬눈으로 주야 도는 물이 있다 구름을 안는 물이 있다
바람을 따라가는 물이 있다 물결에 처지는 물이 있다 수초밭에 혼자 있는 물이 있다
조병화 시인 /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 인생이 그러하거니와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일세
실로 스스로의 쓸쓸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쓸쓸한 노래였으나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 아름다운 말 두고가는 것을 배우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인생은 인간들의 옛집 아! 우리 서로 마지막 할 말을 배우며 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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