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현 시인 / 다부원(多富院)에서
한달 농성(籠城)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 공방의 포화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 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 해 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미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풍경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의 시체.
스스로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
일찌기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지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던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조종현 시인 / 나도 푯말이 되어 살고 싶다
1 나도 푯말이 되어 나랑 같이 살고 싶다. 별 총총 밤이 들면 노래하고 춤도 추랴 철 따라 멧새랑 같이 골 속 골 속 울어도 보고.
2 오월의 창공보다 새파란 그 눈동자 고함은 청천벽력 적군을 꿉질렀다. 방울쇠 손가락에 건 채 돌격하던 그 용자(勇姿).
3 네가 내가 되어 이렇게 와야 할 걸, 내가 네가 되어 이렇게 서야 할 걸, 강물이 치흐른다손 이것이 웬 말인가.
조종현 시인 / 산중문답(産中問答)
(새벽닭 울 때 들에 나가 일하고 달 비친 개울 에 호미 씻고 돌아오는 그 맛을 자네 아능가)
(마당 가 멍석자리 쌉살개도 같이 앉아 저녁을 먹네 아무데나 누워서 드렁드렁 코를 골다가심심하면 퉁소나 한 가락 부는 그런 멋을 자네가 아능가)
(구름 속에 들어가 아내랑 밭을 매면 늙은 아내도 이뻐 뵈네 비온 뒤 앞개울 고기 아이들 데리고 낚는 맛을 자네 태고(太古)적 살림이라꼬 웃을라능가)
(큰일 한다고 고장 버리고 떠나간 사람 잘 되어 오는 놈 하나 없에 소원이 뭐가 있능고 해마다 해마다 시절이나 틀림없으라고 비는 것 뿐이제)
(마음 편케 살 수 있도록 그 사람들 나라일이나 잘 하라꼬 하게 내사 다른 소원 아는것도 없네 자네 이 마음을 아능가)
노인은 눈을 감고 환하게 웃으며 막걸리 한 잔을 따뤄 주신다.
(예 이 맛은 알 만합니더)
청산 백운(靑山白雲)아 할 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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