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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조종현 시인 / 다부원(多富院)에서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17.

조종현 시인 / 다부원(多富院)에서

 

 

한달 농성(籠城)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 공방의 포화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

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 해 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미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풍경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의 시체.

 

스스로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

 

일찌기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지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던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조종현 시인 / 나도 푯말이 되어 살고 싶다

 

 

1

나도 푯말이 되어 나랑 같이 살고 싶다.

별 총총 밤이 들면 노래하고 춤도 추랴

철 따라 멧새랑 같이 골 속 골 속 울어도 보고.

 

2

오월의 창공보다 새파란 그 눈동자

고함은 청천벽력 적군을 꿉질렀다.

방울쇠 손가락에 건 채 돌격하던 그 용자(勇姿).

 

3

네가 내가 되어 이렇게 와야 할 걸,

내가 네가 되어 이렇게 서야 할 걸,

강물이 치흐른다손 이것이 웬 말인가.

 

 


 

 

조종현 시인 / 산중문답(産中問答)

 

 

(새벽닭 울 때 들에 나가 일하고 달 비친 개울

에 호미 씻고 돌아오는 그 맛을 자네 아능가)

 

(마당 가 멍석자리 쌉살개도 같이 앉아 저녁을 먹네

아무데나 누워서 드렁드렁 코를 골다가심심하면 퉁소나

한 가락 부는 그런 멋을 자네가 아능가)

 

(구름 속에 들어가 아내랑 밭을 매면

늙은 아내도 이뻐 뵈네

비온 뒤 앞개울 고기

아이들 데리고 낚는 맛을

자네 태고(太古)적 살림이라꼬 웃을라능가)

 

 

(큰일 한다고 고장 버리고 떠나간 사람

잘 되어 오는 놈 하나 없에

소원이 뭐가 있능고

해마다 해마다 시절이나 틀림없으라고

비는 것 뿐이제)

 

(마음 편케 살 수 있도록

그 사람들 나라일이나 잘 하라꼬 하게

내사 다른 소원 아는것도 없네

자네 이 마음을 아능가)

 

노인은 눈을 감고 환하게 웃으며

막걸리 한 잔을 따뤄 주신다.

 

(예 이 맛은 알 만합니더)

 

청산 백운(靑山白雲)아

할 말 없다.

 

 


 

조종현 시인 (趙宗玄, 1906년-1989년)

본명은 조용제(趙龍濟), 종현은 법명.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철운(鐵雲)·벽로(碧路)·예암산인(猊巖山人), 당호(堂號)는 여시산방(如是山房). 전라남도 고흥 출생. 13세 때 불문에 귀의하였으며, 1932년 중앙불교연구원(中央佛敎硏究院) 유식과(唯識科)를 졸업하고, 그 해 박성순(朴聖純)과 혼인하였다. 4남 4녀를 두었으며, 그 중 차남인 조정래(趙廷來)는 『태백산맥』을 쓴 소설가이다.

1930년 조선불교청년총동맹 중앙집행위원, 1960년 대한불교 법화종 이사, 1971년 대한불교불입종(大韓佛敎拂入宗) 교정원장(敎政院長) 등 불교 관계 요직을 역임하였다. 교육계에도 종사하여 18년간 중고등학교 교사 및 교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