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시인 /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서러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외로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사나운 거리에서 모조리 부스러진 나의 작은 감정들이 소중한 당신 가슴에 안겨 들은 것입니다.
밤이 있어야 했습니다. 밤은 약한 사람들의 최대의 행복 제한된 행복을위하여 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눈치를 보면서 걸어야 하는 거리 연애도 없이 비극만 깔린 이 아스팔트
어느 잎파리 아스라진 가로수에 기대어 별들 아래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보다 앞선 벗들이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을 두고 돌아들 갔습니다.
벗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하여 나는 온 생명을 바치고 노력을 했습니다.
인생이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하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같이 나를 믿어야 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하나의 최후와 같이 당신의 소중한 가슴에 안겨야 했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조병화 시인 / 의자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 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읍니다.
조병화 시인 / 여인
그것은 움직이는 화산 밀폐한 우주 간단없이 흐르는 시내
그것은 가혹한 천국 허망한 수렁 개방된 하늘
그것은 미련의 종말 욕망의 흔적 비밀의 궁전
그것은 움직이는 영원 기름진 갈망 마르지 않는 신비
조병화 시인 / 소라의 초상화
당신네들이나 영악하게 잘 살으시지요 나야 나대로히 나의 생리에 맞는 의상을 찾았답니다.
조병화 시인 / 소라
바다엔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허무한 희망에 몹시도 쓸쓸해지면 소라는 슬며시 물 속이 그립답니다.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소라의 꿈도 바닷물도 굳어간답니다.
큰 바다 기슭엔 온종일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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