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시인 / 흙과 바람
흙으로 빚어졌음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리 바람으로 불어넣었음 마침내 바람으로 돌아가리 멀디 먼 햇살의 바람사이 햇살속 바람으로 나부끼는 흙의 티끌 홀로서 무한영원 별이되어 탈지라도 말하리 말할 수 있으리 다만 너 살아 생전 살의살 뼈의 뼈로 영혼 깊이 보듬어 후회없이 후회없이 사랑했었노라고
조지훈 시인 / 풀잎 단장(斷章)
무너진 성터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 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이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이 피어오르는 한떨기 영혼이여.
조지훈 시인 / 완화삼(玩花衫) - 목월(木月)에게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목어(木魚)를 두드리
조지훈 시인 / 사모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있음을 알았을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 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잊어 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리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조지훈 시인 / 빛을 찾아가는 길
돌부리 가시밭에 다친 발길이 아물어 꽃잎에 스치는 날은 푸나무에 열리는 과일을 따며 춤과 노래도 가꾸어보자
빛을 찾아가는 길의 나의 노래는 슬픈 구름 걷어가는 바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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