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 시인 / 바람은 남풍
바람은 남풍 시절은 사월 보리밭역에 종달새 난다.
누구가 누구가 부르는 듯 앞내 강변에 내달아보니
하―얀 버들꽃 웃으며 손질하며 잡힐 듯 잡힐 듯 날아나 버린다
바람이야 남풍이지, 시절이야 사월이지, 온종일 강가서 버들꽃 잡으러 오르내리노라.
해당화, 삼천리사, 1942
김동환 시인 / 방화범(放火犯)
그 여자가 가만히 와서는 가슴에 불을 지르고 달아납데다.
눈보라 불어 추워 떨 때에도 그이는 모닥불을 피워 놓고 도망합데다.
아무리 땀배는 유월 볕에라도 그이가 지나간 뒤는 석탄불이 붙어집데다.
그러면 나는 혼자서 밤새도록 눈물로 불을 끕니다.
이번이나 이번이나 하고서 그를 잡으러 파수보노라면,
어느 틈에 벌써 꿈 속에 달려들어 온몸에 불을 달아 놓고는 혼까지 깡그리 도적하여 갑데다.
아, 날마다 저녁마다 달려들어 못살게 구는 방화범이여!
국경의 밤, 한성도서, 1924
김동환 시인 / 뱃사공의 아내
1
물결조차 사나운 저 바닷가에 부―서진 뱃조각 주워모으는 저 아낙네 풍랑에 남편을 잃고 지난밤을 얼마나 울며 새웠나
2
타신 배는 바숴서도 돌아오건만 한 번 가신 그분은 올 길 없구나 오―늘도 바닷가에 외로이 서서 한옛날의 생각에 울다가 가네
3
빠른 것은 세월이라 삼 년이 되니 어느 새에 유복자 키워 데리고 바닷가에 이르러 타이르는 말 어서 커서 아버지 원수 갚아라
삼인시가집, 삼천리사, 1929
김동환 시인 / 버들피리
다 큰 이 시절 노돌 지날라니 버들 방축에서 피리 소리 들리네. 나도 어린 철 피리 부노라면 황혼 어스름길, 누나 있어서 산곡간(山谷間)을 날 찾아 헤매 주더니 타관객로(他關客路)에 다 버린 줄 알았더니 노돌 소년이 오늘, 이 심사 괴롭히네
해당화, 삼천리사, 1942
김동환 시인 / 봄
진달래꽃 가득 핀 약산 동대에 서도각씨 꽃 따서 화전 지지네 뻐꾸기도 흥겨워 노래 부르니 봄이 왔네 봄 왔네 이 강산에야
삼인시가집, 삼천리사,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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