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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동환 시인 / 바람은 남풍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19.

김동환 시인 / 바람은 남풍

 

 

바람은 남풍

시절은 사월

보리밭역에

종달새 난다.

 

누구가 누구가

부르는 듯

앞내 강변에

내달아보니

 

하―얀 버들꽃

웃으며 손질하며

잡힐 듯 잡힐 듯

날아나 버린다

 

바람이야 남풍이지,

시절이야 사월이지,

온종일 강가서

버들꽃 잡으러 오르내리노라.

 

해당화, 삼천리사, 1942

 

 


 

 

김동환 시인 / 방화범(放火犯)

 

 

그 여자가 가만히 와서는

가슴에 불을 지르고 달아납데다.

 

눈보라 불어 추워 떨 때에도

그이는 모닥불을 피워 놓고 도망합데다.

 

아무리 땀배는 유월 볕에라도

그이가 지나간 뒤는 석탄불이 붙어집데다.

 

그러면 나는 혼자서

밤새도록 눈물로 불을 끕니다.

 

이번이나 이번이나 하고서

그를 잡으러 파수보노라면,

 

어느 틈에 벌써 꿈 속에 달려들어

온몸에 불을 달아 놓고는

혼까지 깡그리 도적하여 갑데다.

 

아, 날마다 저녁마다 달려들어

못살게 구는 방화범이여!

 

국경의 밤, 한성도서, 1924

 

 


 

 

김동환 시인 / 뱃사공의 아내

 

 

1

 

물결조차 사나운 저 바닷가에

부―서진 뱃조각 주워모으는

저 아낙네 풍랑에 남편을 잃고

지난밤을 얼마나 울며 새웠나

 

2

 

타신 배는 바숴서도 돌아오건만

한 번 가신 그분은 올 길 없구나

오―늘도 바닷가에 외로이 서서

한옛날의 생각에 울다가 가네

 

3

 

빠른 것은 세월이라 삼 년이 되니

어느 새에 유복자 키워 데리고

바닷가에 이르러 타이르는 말

어서 커서 아버지 원수 갚아라

 

삼인시가집, 삼천리사, 1929

 

 


 

 

김동환 시인 / 버들피리

 

 

다 큰 이 시절 노돌 지날라니

버들 방축에서 피리 소리 들리네.

나도 어린 철 피리 부노라면

황혼 어스름길, 누나 있어서

산곡간(山谷間)을 날 찾아 헤매 주더니

타관객로(他關客路)에 다 버린 줄 알았더니 노돌 소년이

오늘, 이 심사 괴롭히네

 

해당화, 삼천리사, 1942

 

 


 

 

김동환 시인 / 봄

 

 

진달래꽃 가득 핀 약산 동대에

서도각씨 꽃 따서 화전 지지네

뻐꾸기도 흥겨워 노래 부르니

봄이 왔네 봄 왔네 이 강산에야

 

삼인시가집, 삼천리사, 1929

 

 


 

김동환 [金東煥, 1901.9.21~?(납북)] 시인

1901년 함경북도 경성(鏡城)에서 출생. 본관 강릉. 호 파인(巴人). 창씨명(創氏名)은 시로야마 세이주[白山靑樹]. 중동(中東)학교를 졸업. 일본 도요[東洋]대학 문과 수학. 1924년 시 〈적성(赤星)을 손가락질하며〉로 《금성(金星)》誌에 추천을 받고 문단에 데뷔. 1925년 한국 최초의 서사시(敍事詩)로 일컬어지는 대표작이며 동명 시집인 《국경의 밤》을 간행. 민요적 색채가 짙은 서정시를 많이 발표하여 이광수(李光洙) ·주요한(朱耀翰) 등과 함께 문명을 떨침.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기자로 근무.

1929년 월간지 《삼천리(三千里)》를 창간. 1938년 《삼천리문학(三千里文學)》 발간. 1939년 총독 미나미[南次郞]의 <새로운 동양의 건설> 등을 《삼천리》에 실어 잡지의 내선일체 체제를 마련한 그는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상임이사 등을 지내면서 적극적인 친일파로 변신. 1950년 6 ·25전쟁 때 납북되었으며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음. 저서로는 『승천(昇天)하는 청춘』, 『삼인시가집(三人詩歌集)』(李光洙 ·朱耀翰 공저), 『해당화』 등과 그외 다수의 소설 ·평론 ·수필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