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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신동엽 시인 / 단풍아 산천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1.

신동엽 시인 / 단풍아 산천

 

 

  즐거웁게 사람들은 웃고 있었지

  네 마음은 열두 번 뒤집혔어도

  즐거웁게 가을은 돌아오고 있었지

 

  여보세요  

  신령(神靈)님

  말씀해 주세요

 

  산과 난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울까요

 

  그리고 그인

  나와 인연이 있을까요

 

  흐들갑스레 단풍은 피어나고 있었지

  네 마음은 열두 번 둔갑 떨었어도  

  단풍은 내 산천(山川) 물들여 울었지

 

  보세요

  상천(上天)계신 한울님

  만날 수 있을까요

  옥(玉)으로 깎을

  출렁일 가슴

 

  보세요

  새 배타고

  목성(木星)에나 가면  

  우린 이 지구(地球)사람 사랑할 수 있을까요

 

  피 터지게 사람들은 웃고 있었지  

  한반도(韓半島) 대관령(大關嶺) 주막집에서

  입 가리고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지

 

다리, 1971. 10

 

 


 

 

신동엽 시인 / 둥구나무

 

 

  뿌리 늘인

  나는 둥구나무.

 

  남쪽 산 북쪽 고을

  빨아들여서

  좌정한

  힘겨운 나는 둥구나무

  다리 뻗은 밑으로

  흰 길이 나고

  동쪽 마을 서쪽 도시

  등 갈린 전지(戰地)

 

  바위도 무쇠고

  투구고 증오고

  빨아들여 한 솥밥  

  수액(樹液) 만드는

  나는 둥구나무

 

신동엽전집, 창작과비평사, 1975


 


 

 

신동엽 시인 / 마려운 사람들

 

 

  마려운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무서워 보이는 것이리

 

  구름도 마려워서

  저기 저 고개턱에 걸려 있나

  고달픈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고요한 전날 밤

  역사도 마려워서

  내 금 그어진 가슴 위에 종종걸음 치나

 

  구름을 쏟아라

  역사의 하늘

  벗겨져라

 

  오줌을

  미국 땅 살만큼의 돈만큼만

  깔겨 봤으면

  너도 사랑스런 얼굴이

 

사상계, 1970. 4


 


 

 

신동엽 시인 / 미쳤던

 

 

스카아트 밑으로

강(江) 뚝에, 바람은

나부끼고 있었다.

 

안경을 낀

내 초여름

고샹 같은 여인(女人)이여.

 

허리 아래로 대낮,

꽃 구렝인

눙치고,

 

깊은 오뇌(懊惱) 감춘

미쳤던,

미쳤던,

꽃 사발이여.

 

스카아트 밑으로

천재(天才)는 흰 구원(久遠) 빛내며.

 

한낮 꿀벌 뒤집혔다


아사녀, 문학사, 1963

 

 


 

 

신동엽 시인 / 보리 밭

 

 

  건, 보리밭서

  강의 물결 타고

  거슬러 올라가던 꿈이었지.

 

  아무도 모를 무섬이었지

  우리네 숨가쁜 몸짓은.

 

  사랑하던 사람들은

 기(旗)를 꽂고 달아나 버리었나,

 

  버스 속선 검정구두 빛났고

  우리 둘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

 

  그건, 보리밭서

  강(江)의 물결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던 꿈이었지.

 

  너의 눈동자엔

  북부여(北扶餘) 달빛

  젖어 떨어지고,

 

  조상쩍 사냥 다니던

  태백(太白)줄기 옹달샘 물맛,

  너의 입술 안에 담기어 있었지.

 

  네 몸냥은 내 안에

  보리밭과 함께

  살아 움직이고,

 

  맨 몸 채, 뙤약볕 아래

  서해바다로 들어가던

  넌 칡순 같은 짐승이었지.

 

창작과비평, 1968. 여름

 


 

 

신동엽 시인(1930년-1969년)

신동엽(申東曄,)은 1930년 8월 18일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서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3년 부여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국가에서 숙식과 학비를 지원해 주는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1949년 부여 주변에 있는 국민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으나 3일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가 그해 9월 말까지 부여 민족청년회 선전부장으로 일하다 국민방위군에 징집됐다.

1953년 단국대를 졸업한 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자취방을 얻어 친구의 도움으로 돈암동 네 거리에 헌책방을 열었다. 신동엽은 이때 이화여고 3학년이던 부인 인병선을 만났다. 1957년 인병선과 결혼한 뒤 고향으로 낙향하여 충남 보령군 주산농업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58년 각혈을 동반한 폐결핵을 앓게 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 돈암동 처가에 아내와 자녀를 올려 보낸 뒤 고향 부여에서 요양하며 독서와 글쓰기에 빠진다. 1959년 독서와 문학 습작에 몰두하다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를 석림(石林)이라는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