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근대)

변영로 시인 / 날이 새입니다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31.

변영로 시인 / 날이 새입니다

 

 

날이 새입니다, 동이 고요히 트입니다,

고흔 새벽 빛이 `세계(世界)의 계시(啓示)'같이 흔들립니다.

 

벗이여, 당신 이마에는 어제 밤의 우수(憂愁)가 쓰여 있습니다,

거섬츠레한 두 눈초리에는 그저도 눈물이 겨웁니다.

 

벗이여, 나의 사랑하는 벗이여, 이리 오십시요―

자릿하게도 산산한 새벽 이슬이 나리는 이곳으로요.

 

`슬픔'은 옛것이요, `기쁨'은 길이 새롭습니다,

울음을 멈추고 이리와서 `밝는 큰 날'의 해 맞이하세요.

 

날이 새입니다, 동이 고요히 트입니다,

고흔 새벽 빛이 `세계(世界)의 기쁨'같이 출렁거립니다.

 

조선의 마음, 평문관, 1924

 

 


 

 

변영로 시인 / 낮에 오시기 꺼리시면

 

 

낮에 오시기 꺼리시면

꿈에나마 오소사

꿈에까지도 안 오시면

`꿈까지도 버리시나'하고

나는 야속하여 하렵니다

계신 곳 모를 아낙네시여

 

오소사 오소사

꿈에나마 오소사―

물결 따르는 달빛같이

물결 따르는 달빛같이

오소서 빛 없는 나의 꿈을

태우듯이 비치소사

 

조선의 마음, 평문관, 1924

 

 


 

 

변영로 시인 / 눈[眼]

 

 

아리따운 그대

그대의 눈찌는 실버들가지

어찌나나 실이 나부끼는지

나의 갈 길 잃었어라

 

길 잃은 나, 길 잃은 나

들도 벌도 헤매이다가

혹시 그대 밑둥에 브듯거든

길 잃었다 찾아 온 줄 아소

 

조선의 마음, 평문관, 1924

 

 


 

변영로 [卞榮魯, 1897.5.9 ~ 1961.3.14] 시인

1898년 서울에서 출생. 아호는 수주(樹州). 시인이며 수필가와 ·영문학자로 활동. 시집으로 『조선의 마음』,『수주 시문선』, 영시집『진달래 동산』이 있음. 이화여전·성균관대 교, 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 초대 회장, 동아일보 기자·대한공론사 이사장 등을 역임. 서울시 문화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