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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춘수 시인 / 쥐 오줌 풀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13.

김춘수 시인 / 쥐 오줌 풀

 

 

하느님,

나보다 먼저 가신 하느님,

오늘 해질녘

다시 한 번 눈 떴다 눈 감는

하느님,

저만치 신발 두짝 가지런히 벗어놓고

어쩌노 멱감은 까치처럼

맨발로 울고 가신

하느님, 그

하느님

 

 


 

 

김춘수 시인 / 처용(處容)

 

 

인간(人間)들 속에서

인간(人間)들에 밟히며

잠을 깬다.

숲 속에서 바다가 잠을 깨듯이

젊고 튼튼한 상수리나무가

서 있는 것을 본다.

남의 속도 모르는 새들이

금빛 깃을 치고 있다.


타령조(打令調).기타(其他), 문화출판사, 1969

 

 


 

 

김춘수 시인 / 흔적

 

 

망석이 어디 갔나

망석이 없으니 마당이 없다

마당이 없으니 삽사리가 없다

삽사리가 없으니

삽사리가 짖어대면

달이 없다

망석이 어디 갔나

 

 


 

 

김춘수 시인 / 꽃을 위한 서시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꽃의 소묘(素描), 백자사, 1959

 

 


 

김춘수 시인(金春洙 1922년-2004년)

 

아명은 대여(大.餘). 1922년 11월 25일 경상남도 충무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교 예술학부에서 공부했으나, 1942년에 천황과 조선총독부를 비판하여 1943년에 퇴학당했다. 1946년에 귀국하여 1951년까지 통영중학교, 마산고등학교에서 교사를 역임했다. 1946년에 시 <애가>를 발표하면서 등단, 이 때부터 시를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1961년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교단에 들어선 그는 1964년부터 1978년까지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영남대학교의 문리대 학장을 지내다가 1981년에 정계로 들어오며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이후 시인과 평론가로서 활동한다. 1948년 첫 시집인 <구름과 장미> 출간을 시작으로 시 <산악(山嶽)>, <사(蛇)>, <기(旗)>, <모나리자에게>, <꽃>, <꽃을 위한 서시> 등을 발표하였다. 다른 시집으로는 <늪>,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처용(處容)>, <남천>, <비에 젖은 달> 등이 있다. 1958년에 한국시인협회상, 1959년에 아시아 자유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