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인 / 쥐 오줌 풀
하느님, 나보다 먼저 가신 하느님, 오늘 해질녘 다시 한 번 눈 떴다 눈 감는 하느님, 저만치 신발 두짝 가지런히 벗어놓고 어쩌노 멱감은 까치처럼 맨발로 울고 가신 하느님, 그 하느님
김춘수 시인 / 처용(處容)
인간(人間)들 속에서 인간(人間)들에 밟히며 잠을 깬다. 숲 속에서 바다가 잠을 깨듯이 젊고 튼튼한 상수리나무가 서 있는 것을 본다. 남의 속도 모르는 새들이 금빛 깃을 치고 있다.
타령조(打令調).기타(其他), 문화출판사, 1969
김춘수 시인 / 흔적
망석이 어디 갔나 망석이 없으니 마당이 없다 마당이 없으니 삽사리가 없다 삽사리가 없으니 삽사리가 짖어대면 달이 없다 망석이 어디 갔나
김춘수 시인 / 꽃을 위한 서시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꽃의 소묘(素描), 백자사,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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