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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규동 시인 / 눈 나리는 밤의 시(詩)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12.

김규동 시인 / 눈 나리는 밤의 시(詩)

 

 

고독(孤獨) 속에서는

낡은 서적(書籍)이 풍기던

곰팡이 내음새가 풍겼다.

 

벗은

'타이피스트' 아가씨처럼

경쾌(輕快)한 솜씨로

무한(無限)한 시(詩)를 써갔다.

 

먼 시간(時間)의 경과(經過) 뒤에 오는

피곤(疲困)과 같은 애수(哀愁).

부두(埠頭)가에서는 지금쯤

하얀마스트가

맥없이 깃발을 내리고 있으리.

 

숱한 어저께들처럼

검은 공간(空間)을 기웃거리는

1953년(年)의 얼굴 얼굴들.

 

여자(女子)들은 푸른 물굽이에 안기우며

출렁이는 해협(海峽)을 건너갔다고 한다.

때묻은 활자(活字) 위에

함박눈처럼 나리는 밤의 침묵(沈黙)!

 

전쟁(戰爭)이 지나간 도시(都市)는

뭇 연대(年代)의  기억(記憶)속에 잠들어가고,

 

모든 전사(戰士)들은

황폐(荒廢)한 화성(火星)의 평면(平面)에

그들의 대열(隊列)을 짓고 있을 뿐이다.

 

……눈이 나리는 밤!

……눈이 나리는 밤의 실내(室內)!

 

나비와 광장, 산호장, 1955

 

 


 

 

김규동 시인 / 달아오를 아궁이를 위한 시

 

 

시가 안 되어

별짓 다 해보다

아궁이를 뜯었다

동서고금 유명하다는

시인들의 시를

이것저것

외워도 보고

그것을 쓸 때의 시인의 모습을 그려보고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마감날은 지났는데 고민하던 끝에

아궁이를 뜯었다

앞집 아주머님네는

팔만 원 들여 온돌까지 뜯었지만

그런 것은 엄두도 못내고

만만한 아궁이를 뜯었다

시꺼먼 연탄을 두 장씩 삼켜먹고도

얼음장인 이 온돌은 도대체 무엇이냐

검붉게 썩은 방바닥이 발이 시리다

저주스런 방이다

쌍말로 빌어먹을 온돌이다

정을 대고 망치질을 해서 뜯어낸 다음

허리 아래 묻혔던 화로를

가슴팍까지 끌어올려서 묻고

급한 성미에 맨 손으로

시멘트를 반죽해서

든든하게 발랐다

완전히 반나절이 걸렸다

이까짓 일을 하는데 반나절이 걸린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가

시를 쓴다더니 뭘 하느냐고 놀랐다

나는 먼지를 뒤집어 쓴 얼굴로

담배 한대 피워물고

무슨 커다란 자신이라도 선 것처럼

한 마디 하였다

이젠 틀림없을 거요

어디 불 한번 넣어 보시오라고

밤낮 무슨 실험 같은 것이나 하고 사는

이런 남편을 믿고 평생을 사는 아내가

가엾은 생각이 들었으나

마음은 새로이 안정을 얻은 듯 싶었다

저녁에

대학을 마치고

회사에 다니는 큰아이가 퇴근하고 돌아와

모래 되어 쓰러진 애비보고

한마디 수고했다는 인사도 없이

족보에 없는 음악을 듣고 앉았는 것이

약간 서운하기는 했으나.

 

깨끗한 희망, 창작과비평사, 1985

 

 


 

 

김규동 시인 / 대위(對位)

 

 

하얀

페이브멘트위에 뿌려지는

태양(太陽)의 조수(潮水)가

어린 담수어(淡水魚)와 같다고 하던

여자(女子)는

화성(火星)에의 비상(飛翔)이

그 마지막 염원(念願)이라 하였다.

 

사나이들은

예고(豫告)도 없이

섬광(閃光)하는 전쟁(戰爭)의 태풍(颱風) 속에

아무렇게나

그들의 육체(肉體)를 잃어버리고,

 

'부루―스트'의 작품(作品)에서처럼

로켓의 포물선(抛物線)이

의식(意識)의 공간(空間)을 스쳐 갈 때

'이스라엘'의 백성(百姓)과도 같이

신(神)의 영광(榮光)을 찬양(讚揚)하는

우리들의 대열(隊列)엔

'도―바'해협(海峽) 함대사령관(艦隊司令官)의

푸른 행운(幸運)이

영원(永遠)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윽고

전쟁(戰爭)의 탄도(彈道)를 날러간

어린 나비들은

원시림(原始林)의 정신(精神)을 넘어

찬란한 대위(對位)의 층계(層階)를

내려가고 있을 것이다.

 

나비와 광장, 산호장, 1955

 

 


 

김규동 시인(金奎東 1925~2011)

호는 문곡(文谷). 1925년 2월 13일 함북 경성 출생. 경성고보를 거쳐 1946년 연변의대를 수료했고 평양종합대학을 중퇴했다. 경성고보시절 스승 김기림(金起林)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시 「강」이 당선되어 문학활동을 시작했으며, 1951년 박인환(朴寅煥)‧김경린(金璟麟)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했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는 살리라」,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포대가 있는 풍경」이 각각 당선되기도 했다.

1970년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참여했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그의 시작활동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번째 시기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등을 발간했던 1960년 초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그는 「포대가 있는 풍경」, 「어느 병상의 연대」 등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쟁 관련 소재,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의식, 현실의 비판적 추구 등의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많이 발표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시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으로 활동한 것은 그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 시기의 시적 경향은 시집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시는 통일문제, 노사문제, 학생시위 등 현실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있거니와, 이는 현실의 문제에 능동적인 참여와 실천을 강조한 사회파 모더니즘으로의 적극적인 변모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시집으로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느릅나무에게』(2005) 등이 있고, 시선집 『생명의 노래』(1991), 『길은 멀어도』(1991), 『흰각시 붓꽃』(1993) 등이 있다. 2011년 시인의 시 432편을 모은 『김규동 시전집』이 창비사에서 발간되었다. 시작 이외에 평론활동도 꾸준히 계속하여 『새로운 시론』(1959), 『지성과 고독의 문학』(1962),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1979) 등의 평론집을 내기도 했으며 자전 에세이 『나는 시인이다』(2011)이 있다. 1960년에 자유문인회협상, 2006년 만해문학상, 2011년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수상했고, 1996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1년 9월 28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