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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신동엽 시인 / 정본(定本) 문화사대계(文化史大系)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11.

신동엽 시인 / 정본(定本) 문화사대계(文化史大系)

 

 

오랜 빙하기(氷河期)의 얼음장을 뚫고 연연히 목숨 이어 그 거룩한 씨를 몸지녀 오느라고 뱀은 도사리는 긴 짐승 냉혈(冷血)이 좋아져야 했던 것이다.

 

몇만년 날이 풀리고, 흙을 구경한 파충(爬蟲)들은 구석진 한지에서 풀려 나온 털가진 짐승들을 발견하고 쪽쪽이 역량을 다하여 취식하며 취식당했다.

 

어느날, 흙굴 속서 털사람이 털곰과 털숲 업쓸고 있을 때, 그 넘편 골짜기 양지밭에선 긴 긴 물건이 암 사람의 알 몸에 붙어 있었다.

 

얼음 땅, 이혈(異血) 다스운 피를 맛본 냉혈은 다음 날도 또 다음 꽃 나절도 암 사람의 몸에 감겨 애무 흡혈(吸血)하고 있었으나 천하, 욕(慾)을 이루 끝 새키지 못한 숫뱀은 마침내 요독을 악으로 다하여 앙! 앙! 그 예쁜 몸알을 물어 죽여 버리고야 말았다.

 

암살진 피부는 대대손손(代代孫孫) 지상(地上)에 살아 징글맞게 미끈덩한 눈물겨운 그 압축(壓縮)의 황홀을. 내밀히 기어오르게 하려 하여도 냉혈 그는 능글맞은 몸짓으로 천연 미끄러 빠져 달아나 버리는 것이었다.

 

오랜 세상, 그리하여 뱀과 사람과의 꽃다운 이야기는 인간 사는 사회 어델 가나 끊일 줄 몰라 하더니, 오늘도 암살과 숫살은 원인 모를 열에 떠 거리와 공원(公園)으로 기어나갔다가 뱀 한 마리씩을 짓니까려 뭉개고야 숨이 가빠 돌아왔다.

 

내 마음 미치게 불질로 놓고 슬슬 빠져나간 배반자야. 내 암살 꼬여내어 징그런 짓 배워준 소름칠 이것아. 소름칠 이눔아.

 

이들 짐승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인정(人情)은 오늘 없어도, 내일날 그들의 욕정장(欲情場)에 능구리는 또아리 틀어 그 몸짓과 의상(衣裳)은 꽃구리를 닮아 갈지이니.

 

이는 다만 또 다음 빙하기(氷河期)를 남몰래 예약해둔 뱀과 사람과의 아름다운 인연을 뜻함일지니라.

 

세계, 1960년 6월

 

 


 

 

신동엽 시인 / 종로오가(鍾路五街)

 

 

이슬비 오는 날.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는 군상 속에서 죄없이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

그 소년의 등허리선 먼 길 떠나 온 고구마가

흙묻은 얼굴들을 맞부비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었다.

 

충청북도 보은 속리산, 아니면

전라남도 해남땅 어촌 말씨였을까.

나는 가로수 하나를 걷다 되돌아섰다.

그러나 노동자의 홍수 속에 묻혀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눈녹이 바람이 부는 질척질척한 겨울날,

종묘(宗廟) 담을 끼고 돌다가 나는 보았어.

그의 누나였을까.

부은 한쪽 눈의 창녀가 양지쪽 기대 앉아

속내의 바람으로, 때묻은 긴 편지 읽고 있었지.

 

그리고 언젠가 보았어.

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

자갈지게 등짐하던 노동자 하나이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

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

반도의 하늘 높이서 태양이 쏟아지고,

싸늘한 땀방울 뿜어낸 이마엔 세 줄기 강물.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銀行國)의

물결이 딩굴고 있었다.

 

남은 것은 없었다.

나날이 허물어져 가는 그나마 토방 한 칸.

봄이면 쑥, 여름이면 나무뿌리, 가을이면 타작마당을 휩쓰는 빈 바람.

변한 것은 없었다.

이조 오백년은 끝나지 않았다.

 

옛날 같으면 북간도라도 갔지.

기껏해야 뻐스길 삼백리 서울로 왔지.

고층건물 침대 속 누워 비료광고만 뿌리는 거머리 마을,

또 무슨 넉살 꾸미기 위해 짓는지도 모를 빌딩 공사장,

도시락 차고 왔지.

 

이슬비 오는 날,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그 소년의 죄없이 크고 맑기만한 눈동자엔 밤이 내리고

노동으로 지친 나의 가슴에선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동서춘추(東西春秋), 1967. 6

 

 


 

 

신동엽 시인(1930년-1969년)

신동엽(申東曄,)은 1930년 8월 18일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서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3년 부여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국가에서 숙식과 학비를 지원해 주는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1949년 부여 주변에 있는 국민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으나 3일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가 그해 9월 말까지 부여 민족청년회 선전부장으로 일하다 국민방위군에 징집됐다.

1953년 단국대를 졸업한 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자취방을 얻어 친구의 도움으로 돈암동 네 거리에 헌책방을 열었다. 신동엽은 이때 이화여고 3학년이던 부인 인병선을 만났다. 1957년 인병선과 결혼한 뒤 고향으로 낙향하여 충남 보령군 주산농업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58년 각혈을 동반한 폐결핵을 앓게 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 돈암동 처가에 아내와 자녀를 올려 보낸 뒤 고향 부여에서 요양하며 독서와 글쓰기에 빠진다. 1959년 독서와 문학 습작에 몰두하다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를 석림(石林)이라는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