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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규동 시인 / 두만강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13.

김규동 시인 / 두만강

 

 

얼음이 하도 단단하여

아이들은

스케이트를 못 타고

썰매를 탔다

얼음장 위에 모닥불을 피워도

녹지 않는 겨울 강

밤이면 어둔 하늘에

몇 발의 총성이 울리고

강 건너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 멀리 들려왔다

우리 독립군은

이런 밤에

국경을 넘는다 했다

때로 가슴을 가르는

섬뜩한 파괴음은

긴장을 못 이긴 강심 갈라지는 소리

나운규는 '아리랑'을 썼고

털모자 눌러쓴 독립군은

수많은 일본군과 싸웠다

지금 두만강엔

옛 아이들 노는 소리 남아 있을까

통일이 오면

할 일도 많지만

두만강을 찾아 한번 목놓아 울고 나서

흰 머리 날리며

씽씽 썰매를 타련다

어린 시절에 타던

신나는 썰매를 한번 타보련다.

 

오늘밤 기러기떼는, 동광출판사, 1989

 

 


 

 

김규동 시인 / 두보(杜甫)

 

 

해는 졌습니다

강물이

슬피 웁니다

까마귀 집으로 돌아갑니다

손이 곱아

띠를 맬 수 없는데

옷은 짧아

바람이 시립니다

양식은 떨어져

막내둥이는 굶어 죽었고

전쟁은 계속됩니다

아득한 이 하늘가

묵어갈 잠자리는 있을는지.

 

깨끗한 희망, 창작과비평사, 1985

 

 


 

 

김규동 시인 / 무등산

 

 

한 몸이 되기도 전에

두 팔 벌려 어깨를 꼈다

흩어졌는가 하면

다시 모이고

모였다간 다시 흩어진다

높지도 얕지도 않게

그러나 모두는 평등하게

이 하늘 아래 뿌리박고 서서

아 이것을 지키기 위해

그처럼 오랜 세월 견디었구나.

 

깨끗한 희망, 창작과비평사, 1985

 

 


 

 

김규동 시인 / 무서운 아이들

 

 

대룡이는 혀가 짧아

말을 제대로 못했다

성문에서 뛰어내리다 혀를 깨물었다고 했다

큰 머리에 두어 군데 흉터가 있는데 거기만 머리털이 없었다

아이들은

대룡이를

대룡 대룡 똥대룡 하고 놀렸다

그러면 대룡이가 입을 해벌리고 쫓아왔다

아이들은 달아나며 돌을 던지기도 하고 뒤로 돌아가 막대기로 차기도 했다

대룡이는 어쩔 줄 모르고 멈춰서서 어허 하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히히 웃으며 잔인한 짓거리 저지르기 좋아하던 무서운 아이들

아이들은 여럿 함께 달려들어 그를 쓰러뜨리고 때렸다

얻어맞으면서 그는 모를 소리 배앝으며 마구 울었다

대룡이는 코피를 흘렸다

아이들이 다 가버린 운동장 구석 같은 데서 흙투성이가 된 채 뒹굴며 그는 슬피 울었다

대룡이네 집은 어딘지 모르나 학교에서 아주 멀다고 했다

어스름 저녁 멍하니 앉아 있을 때 어디선가 대룡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아이들 얼굴은 다 잊었으나 대룡이 피에 젖은 얼굴이 선히 보인다

나보다 윗반이던 검은 옷 입은 대룡이, 대룡이는 지금 이북에 살아 있을까

혀가 짧아 말을 더듬거리던 가엾은 대룡이

어서 통일이 되어 다만 한 번만이라도 그를 만나보았으면.

 

깨끗한 희망, 창작과비평사, 1985

 

 


 

김규동 시인(金奎東 1925~2011)

호는 문곡(文谷). 1925년 2월 13일 함북 경성 출생. 경성고보를 거쳐 1946년 연변의대를 수료했고 평양종합대학을 중퇴했다. 경성고보시절 스승 김기림(金起林)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시 「강」이 당선되어 문학활동을 시작했으며, 1951년 박인환(朴寅煥)‧김경린(金璟麟)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했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는 살리라」,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포대가 있는 풍경」이 각각 당선되기도 했다.

1970년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참여했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그의 시작활동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번째 시기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등을 발간했던 1960년 초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그는 「포대가 있는 풍경」, 「어느 병상의 연대」 등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쟁 관련 소재,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의식, 현실의 비판적 추구 등의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많이 발표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시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으로 활동한 것은 그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 시기의 시적 경향은 시집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시는 통일문제, 노사문제, 학생시위 등 현실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있거니와, 이는 현실의 문제에 능동적인 참여와 실천을 강조한 사회파 모더니즘으로의 적극적인 변모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시집으로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느릅나무에게』(2005) 등이 있고, 시선집 『생명의 노래』(1991), 『길은 멀어도』(1991), 『흰각시 붓꽃』(1993) 등이 있다. 2011년 시인의 시 432편을 모은 『김규동 시전집』이 창비사에서 발간되었다. 시작 이외에 평론활동도 꾸준히 계속하여 『새로운 시론』(1959), 『지성과 고독의 문학』(1962),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1979) 등의 평론집을 내기도 했으며 자전 에세이 『나는 시인이다』(2011)이 있다. 1960년에 자유문인회협상, 2006년 만해문학상, 2011년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수상했고, 1996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1년 9월 28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