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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춘수 시인 / 처용단장(處容斷章)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14.

김춘수 시인 / 처용단장(處容斷章) 제1부(第一部)

 

 

1의 1

 

바다가 왼종일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이따금

바람은 한려수도(閑麗水道)에서 불어오고

느릅나무 어린 잎들이

가늘게 몸을 흔들곤 하였다.

 

날이 저물자

내 늑골(肋骨)과 늑골(肋骨) 사이

홈을 파고

거머리가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베고니아의

붉고 붉은 꽃잎이 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다시 또 아침이 오고

바다가 또 한 번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뚝 뚝 뚝, 천(阡)의 사과알이

하늘로 깊숙이 떨어지고 있었다.

 

가을이 가고 또 밤이 와서

잠자는 내 어깨 위

그해의 새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둠의 한쪽이 조금 열리고

개동백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나는

내리는 그

희디흰 눈발을 보고 있었다.

 

1의 2

 

삼월(三月)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南)쪽 바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삼월(三月)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1의 3

 

벽(壁)이 걸어오고 있었다.

늙은 홰나무가 걸어오고 있었다.

한밤에 눈을 뜨고 보면

호주(濠洲) 선교사(宣敎師)네 집

회랑(廻廊)의 벽(壁)에 걸린 청동시계(靑銅時計)가

겨울도 다 갔는데

검고 긴 망또를 입고 걸어오고 있었다.

내 곁에는

바다가 잠을 자고 있었다.

잠자는 바다를 보면

바다는 또 제 품에

숭어새끼를 한 마리 잠재우고 있었다.

 

다시 또 잠을 자기 위하여 나는

검고 긴

한밤의 망또 속으로 들어가곤 하였다.

바다를 품에 안고

한 마리 숭어새끼와 함께 나는

다시 또 잠이 들곤 하였다.

 

*

 

호주(濠洲) 선교사(宣敎師)네 집에는

호주(濠洲)에서 가지고 온 해와 바람이

따로 또 있었다.

탱자나무 울 사이로

겨울에 죽두화가 피어 있었다.

주(主)님 생일(生日)날 밤에는

눈이 내리고

내 눈썹과 눈썹 사이 보이지 않는 하늘을

나비가 날고 있었다.

한 마리 두 마리,

 

1의 4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있던 자리에

군함(軍艦)이 한 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여름에 본 물새는

죽어 있었다.

물새는 죽은 다음에도 울고 있었다.

한결 어른이 된 소리로 울고 있었다.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없는 해안선(海岸線)을

한 사나이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한쪽 손에 죽은 바다를 들고 있었다.

 

1의 5

 

아침에 내린

복동(福童)이의 눈과 수동(壽童)이의 눈은

두 마리의 금송아지가 되어

하늘로 갔다가

해 질 무렵

저희 아버지의 외발 달구지에 실려

금간 쇠방울 소리를 내며

돌아오곤 하였다.

한밤에 내린

복동(福童)이의 눈과 수동(壽童)이의 눈은 또

잠자는 내 닫힌 눈꺼풀을

더운 물로 적시고 또 적시다가

동이 트기 전

저희 아버지의 외발 달구지에 실려

금간 쇠방울 소리를 내며

돌아가곤 하였다.

 

*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은 아침을 뭉개고

바다를 뭉개고 있었다.

먼저 핀 산다화(山茶花) 한 송이가

시들고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서넛 둘러앉아

불을 지피고 있었다.

아이들의 목덜미에도 불 속으로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1의 6

 

모과(木瓜)나무 그늘로

느린 햇발의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지는 석양(夕陽)을 받은

적은 비탈 위

구기자(枸杞子) 몇 알이 올리브빛으로 타고 있었다.

금붕어의 지느러미를 쉬게 하는

어항(魚缸)에는 크낙한 바다가

저물고 있었다.

Vou 하고 뱃고동이 두 번 울었다.

모과(木瓜)나무 그늘로

느린 햇발의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장난감 분수(噴水)의 물보라가

솟았다간

하얗게 쓰러지곤 하였다.

 

1의 7

 

새장에는 새똥 냄새도 오히려 향긋한

저녁이 오고 있었다.

잡혀온 산새의 눈은

꿈을 꾸고 있었다.

눈 속에서 눈을 먹고 겨울에 익는 열매

붉은 열매,

봄은 한 잎 두 잎 벚꽃이 지고 있었다.

입에 바람개비를 물고 한 아이가

비 개인 해안통(海岸通)을 달리고 있었다.

한 계집아이는 고운 목소리로

산토끼 토끼야를 부르면서

잡목림(雜木林) 너머 보리밭 위에 깔린

노을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1의 8

 

내 손바닥에 고인 바다,

그때의 어리디어린 바다는 밤이었다.

새끼 무수리가 처음의 깃을 치고 있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동안

바다는 많이 자라서

허리까지 가슴까지 내 살을 적시고

내 살에 테 굵은 얼룩을 지우곤 하였다.

바다에 젖은

바다의 새하얀 모래톱을 달릴 때

즐겁고도 슬픈 빛나는 노래를

나는 혼자서만 부르고 있었다.

여름이 다한 어느 날이던가 나는

커다란 해바라기가 한 송이

다 자란 바다의 가장 살찐 곳에 떨어져

점점점 바다를 덮는 것을 보았다.

 

1의 9

 

팔다리가 뽑힌 게가 한 마리

길게 파인 수렁을 가고 있었다.

길게 파인 수렁의 개나리꽃 그늘을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가고 있었다.

등에 업힌 듯한 그

두 개의 눈이 한없이 무겁게만 보였다.

 

1의 10

 

은종이의 천사(天使)는

울고 있었다.

누가 코밑수염을 달아 주었기 때문이다.

제가 우는 눈물의 무게로

한쪽 어깨가 조금 기울고 있었다.

조금 기운 천사(天使)의

어깨 너머로

얼룩암소가 아이를 낳고 있었다.

아이를 낳으면서

얼룩암소도 새벽까지 울고 있었다.

그해 겨울은 눈이

그 언저리에만 오고 있었다.

 

1의 11

 

울지 말자,

산다화(山茶花)가 바다로 지고 있었다.

꽃잎 하나로 바다는 가리워지고

바다는 비로소

밝은 날의 제 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발가벗은 바다를 바라보면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설청(雪晴)의 하늘 깊이

울지 말자,

산다화(山茶花)가 바다로 지고 있었다.

 

1의 12

 

겨울이 다 가도록 운동장(運動場)의

짧고 실한 장의자(長椅子)의 다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겨울이 다 가도록

아이들의 목덜미는 모두

눈에 덮인 가파른 비탈이었다.

산토끼의 바보,

무르팍에 피를 조금 흘리고 그때

너는 거짓말처럼 죽어 있었다.

봄이 와서

바람은 또 한번 한려수도(閑麗水道)에서 불어오고

겨울에 죽은 네 무르팍의 피를

바다가 씻어 주고 있었다.

산토끼의 바보,

너는 죽어 바다로 가서

밝은 날 햇살 퍼지는

내 조그마한 눈웃음이 되고 있었다.

 

1의 13

 

봄은 가고

그득히 비어 있던 풀밭 위 여름,

네 잎 토끼풀 하나,

상수리나무 잎들의

바다가 조금씩 채우고 있었다.

언제나 거기서부터 먼저

느린 햇발의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탱자나무 울이 있었고

탱자나무 가시에 찔린

서(西)녘 하늘이 내 옆구리에

아프디아픈 새발톱의 피를 흘리고 있었다.

 

타령조(打令調).기타(其他), 문화출판사, 1969

 

 


 

 

김춘수 시인 / 시(詩) 1

 

 

동체(胴體)에서 떨어져 나간 새의 날개가

보이지 않는 어둠을 혼자서 날고

한 사나이의 무거운 발자국이 지구(地球)를 밟고 갈 때

허물어진 세계(世界)의 안쪽에서 우는

가을 벌레를 말하라.

아니

바다의 순결(純潔)했던 부분을 말하라.

베고니아의 꽃잎에 듣는

아침 햇살을 말하라.

아니

그 울음과 굴뚝을 말하고

겨울 습기(濕氣)와

한강변의 두더지(漢江邊)를 말하라.

동체(胴體)에서 떨어져 나간 새의 날개가

보이지 않는 어둠을 혼자서 날고

한 사나이의 무거운 발자국이

지구(地球)를 밟고 갈 때


타령조(打令調).기타(其他), 문화출판사, 1969

 

 


 

 

김춘수 시인 / 내가 만난 이중섭

 

 

광복동(光復洞)에서 만난 이중섭(李仲燮)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南浦洞)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李仲燮)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남천(南天), 근역서재, 1977

 

 


 

 

김춘수 시인 / 부두에서

 

 

바다에 굽힌 사나이들

하루의 노동을 끝낸

저 사나이들의 억센 팔에 안긴

깨지지 않고 부셔지지 않는

 

온전한 바다,

물개들과 상어떼가 놓친

그 바다.

 

 


 

김춘수 시인(金春洙 1922년-2004년)

 

아명은 대여(大.餘). 1922년 11월 25일 경상남도 충무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교 예술학부에서 공부했으나, 1942년에 천황과 조선총독부를 비판하여 1943년에 퇴학당했다. 1946년에 귀국하여 1951년까지 통영중학교, 마산고등학교에서 교사를 역임했다. 1946년에 시 <애가>를 발표하면서 등단, 이 때부터 시를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1961년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교단에 들어선 그는 1964년부터 1978년까지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영남대학교의 문리대 학장을 지내다가 1981년에 정계로 들어오며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이후 시인과 평론가로서 활동한다. 1948년 첫 시집인 <구름과 장미> 출간을 시작으로 시 <산악(山嶽)>, <사(蛇)>, <기(旗)>, <모나리자에게>, <꽃>, <꽃을 위한 서시> 등을 발표하였다. 다른 시집으로는 <늪>,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처용(處容)>, <남천>, <비에 젖은 달> 등이 있다. 1958년에 한국시인협회상, 1959년에 아시아 자유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