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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규동 시인 / 바다의 기록(記錄)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14.

김규동 시인 / 바다의 기록(記錄)

 

 

□ 파도(波濤) 소리

 

비끼인 구름 사이에서도

벌들이 속삭이는 한밤.

 

빈대와 모기와

바람 한점 들 리 없는

서울의 더위에 견디던 몸이

깊은 밤 파도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네살 짜리가

'아버지, 기차가 이렇게 쿵쿵거려서 어떻게 내려!'

천막밑까지 와서

철석거리는 파도 소리를

아직도 대천행(大川行) 기차(汽車) 속인 줄 알고

이런 잠꼬대를 하는 바다의

첫날밤이었다…….

 

□ 저녁 바다

 

해는 천막(天幕) 등뒤에서

떠올랐다가 수평선(水平線)에 진다.

 

붉은 석양 노을에 물드는 바다의 잔등

우물 쭈물 하다가는 저녁밥이 늦는다.

 

바람이 거세어

담배 불을 붙이지 못하는 언덕―

 

때마침 어두움이 내려온 바닷가를

양키부부(夫婦)가 아득한 추억(追憶) 속에서처럼 말없이 걷는다.

 

□ 아침의 풍속(風俗)

 

아침 여섯시만 되면

시골 아주머님들이 삼십리 길을 걸어

충청도(忠淸道) 사투리와 함께

김치와 조개를 팔러 온다.

 

물이 나간 사장은

아침의 운동객(運動客)을 즐겁게 하는 '그라운드'

경쾌(輕快)한 걸음걸이로 나타나는

버스 회사(會社) 사장(社長)의 골프가 멋진 격식(格式)을 갖춘다.

 

차츰 선명해지는

바다 저쪽의 조고만 섬들.

하늘은 쾌청(快晴)―남서풍(南西風)이 불고,

해안(海岸)에 모여 앉은 천막촌(天幕村)이

깃발처럼 퍼덕거린다.

 

□ 바다의 마음

 

바다에서는 누구나 다

조금씩 흥분(興奮)해 있는가 보다.

나이 먹은 아주머니들도

여학생(女學生)들처럼 수다스러웁다.

 

파도를 안고 뛰어들었다가

파도에 밀려 쫓겨 나오는

여인(女人)들의 웃음 소리

 

문득 잃어버렸던 청춘(靑春)이 복바쳐 올라

그 아무라도 붙잡고

소리쳐 외치고 싶은 마음의 충동(衝動)을 이기지 못한다.

 

□ 조개껍질 이야기

 

조개 가루

하얗게 비낀 모래불,

조수(潮水)가 밀려나간 아침과 저녁

분홍빛, 남빛, 초록빛

'러브레타'처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소녀(少女)들이

바다의 패물인 구멍 뚫린

조개껍질을 줍는다.

 

집에 돌아가면 엄마와 동생

또는 마음속의 귀한 사람에게

바다의 선물을 뵈여 주리라.

 

차츰 잔잔해지는 바다 물결

갑자기 구리빛 바위들이

푸른 요를 뚫고

머리를 치켜 든다.

 

오전(午前) 십일시(十一時)

젖가슴처럼 부풀어 오른

'비―취파라솔'이 점점(點點)히 늘어 앉았다.

 

□ 서정해안(抒情海岸)

 

시원한 해풍(海風),

푸른 바다가 하도 신기하여 아침 저녁

짠물에 세수하고 머리를 감는다.

 

온화(溫和)한 날씨

쨍쨍한 햇빛에 피부가 익어가고,

잠을 청하지 않아도

저절로 잠이 들어 버리는 바다의 일과(日課)들

 

이 바다를 찾아 오는

수많은 해수욕객(海水浴客)들 모양

떠들기 위함이 아니었거니

둥근 수평선(水平線)을 향하여

예민(銳敏)한 소년(少年)처럼

하얀 편지를 쓰는 것이다.

 

밤마다 쳐다 보는

총총한 별빛―아 내가 언제 저런 별을 사랑했던 것일까.

 

넓은 하늘에 뿌려진

보석(寶石)의 아름다운 빛을 쳐다 보며

새삼스러이 내가 걸어 온

가느다란 반생을 생각해 볼 때

회한(悔恨)과 쓰라림의 무성한 잡초(雜草)뿐―

너무나 초조하고 안타까운 생애의 추억 때문에

초생달이 어둑 침침한 밤 바닷가에 앉아

나부끼는 외로움을 견딘다.

 

현대의 신화, 위성문화사, 1958

 

 


 

 

김규동 시인 / 밤의 신화(神話)

 

 

북소리. 나팔소리. 다채로운 행진곡이 울려 오는 소리에 잠을 깬 나는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갔다.

 

텅빈 대낮의 거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오는 것은 북을 치며 걸어오는 코끼리와 그 옆에 서서 피리와 나팔을 부는 광대들이었다.

 

코끼리가 어떻게 저런 음악을 연주하나? 나는 창피한 줄 모르고 아이들처럼 서서 당당히 행진해 오는 코끼리를 구경하였다.

 

내가 입가에 미소를 띄우자 어진 코끼리의 둥그런 눈이 껌벅거리며 웃음을 감추지 못하면서 더욱 신이 나서 또 다른 악기에 떡떡 장단이 들어 맞게 북을 쳐대었다.

 

이 거창한 행진의 뒤를 따르는 것은 아이들뿐― 아이들은 바지가 흘러내린 것도 모르고 어른의 걸음걸이로 또 달달거리면서 행진의 뒤를 따랐다. 코를 훌적거리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숨가쁨과 무한한 호기심이 빗기었다.

 

검은 가로수와 초연 냄새―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를 몰라서 오늘이 무슨 날인가 곰곰히 생각해 보았으나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가족도 동료도 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나만 혼자 이 거리에 나와 선 지금― 그러면 가족은 어찌된 것일까?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 네가 좋아하는 코끼리가 나팔을 불면서 오고 있구나!

 

나는 비로소 오늘이 무슨 날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 전쟁이 지금 바로 끝난게로나. 지금까지 나는 잠을 자고 있었나보다. 그러면 나의 혈육들은 어찌 되었을까. 그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과 세기의 문명은 어찌된 것일까.

 

그러자 이해 못한 행진의 배경이라도 장식하는듯 코끼리의 음악대가 걸어오던 저쪽 서편 하늘가에서 푸른 광선이 공중에 번쩍거렸다. 그것은 마지막으로 폭발하는 인간의 무기라 하였다.  그것은 바로 전쟁의 종언을 고하는 신호등이란 것을 순간 나는 깨달았다.

 

코끼리의 악대가 지나가자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랐다. 남루한 옷을 입은 아이들은 줄곧 코끼리와 광대를 따라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쉬지도 않고 따라가고 있었는데…….

 

현대의 신화, 위성문화사, 1958

 

 


 

 

김규동 시인 / BOILER사건(事件)의 진상(眞狀)

 

 

어둠과 BOILER―

뭇 물체(物體)의 형상(形象)을 헤아릴 길 없었음은 암흑(暗黑)했다는 까닭 이외(以外)엔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들과 인간(人間)과 인간(人間)들 속에서 시인(詩人)은 침전(沈澱)으로 굳어간 육체(肉體)를 BOILER의 어느 경사면(傾斜面)에 누이고 성좌(星座)와의 회화(會話)를 최후(最後)로 사랑하였다.

 

높아가는 고압전선(高壓電線)의 울음소리는 안개 어린 밤의 묘지(墓地)의 인광(燐光)처럼 배주(背柱)에 스며들고,

굶주려 넘어지는 생명(生命)들과 수없는 임종(臨終)의 눈 나리는 새벽.

향락(享樂)의 극치(極致)와 극치(極致)의 마찰(摩擦)에서 일어나는 뿌연 암모니아의 빛깔.

폐문(肺門)이 부은 바다와 하늘과 해쓱해진 산천(山川)과 태양(太陽). 그리고 다가오는 25시(時).

광선(光線)! '모든 운명(運命)의 전말(顚末)을 똑똑히 보라'

기관장(機關長)의 비명(悲鳴)과 그에 따르는 기관사(機關士)들의 아우성.

 

폭발(爆發)!

아―크등(燈)의 밝음 속에 시인(詩人)은 예감(豫感)을 육안(肉眼)으로 체험(體驗)했다.

BOILER엔 오! BOILER엔 모세혈관(毛細血管) 같은 무수한 절망(絶望)의 선(線)이 서려 있었던 것을―

 

죽음과 시체(屍體)의 시체(屍體)들의 시체(屍體)속에 시인(詩人)은 끄슬은 머리와 떨어진 팔다리의 상처(傷處) 그대로를 지니고 쓰러졌을 뿐,

 

태양(太陽)의 음악(音樂)과 바다의 광선(光線)

오! 새로운 바다의 광선(光線)과 태양(太陽)의 음악(音樂)만이 또다시 흐르기 시작(始作)한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

 

나비와 광장, 산호장, 1955

 

 


 

김규동 시인(金奎東 1925~2011)

호는 문곡(文谷). 1925년 2월 13일 함북 경성 출생. 경성고보를 거쳐 1946년 연변의대를 수료했고 평양종합대학을 중퇴했다. 경성고보시절 스승 김기림(金起林)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시 「강」이 당선되어 문학활동을 시작했으며, 1951년 박인환(朴寅煥)‧김경린(金璟麟)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했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는 살리라」,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포대가 있는 풍경」이 각각 당선되기도 했다.

1970년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참여했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그의 시작활동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번째 시기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등을 발간했던 1960년 초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그는 「포대가 있는 풍경」, 「어느 병상의 연대」 등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쟁 관련 소재,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의식, 현실의 비판적 추구 등의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많이 발표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시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으로 활동한 것은 그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 시기의 시적 경향은 시집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시는 통일문제, 노사문제, 학생시위 등 현실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있거니와, 이는 현실의 문제에 능동적인 참여와 실천을 강조한 사회파 모더니즘으로의 적극적인 변모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시집으로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느릅나무에게』(2005) 등이 있고, 시선집 『생명의 노래』(1991), 『길은 멀어도』(1991), 『흰각시 붓꽃』(1993) 등이 있다. 2011년 시인의 시 432편을 모은 『김규동 시전집』이 창비사에서 발간되었다. 시작 이외에 평론활동도 꾸준히 계속하여 『새로운 시론』(1959), 『지성과 고독의 문학』(1962),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1979) 등의 평론집을 내기도 했으며 자전 에세이 『나는 시인이다』(2011)이 있다. 1960년에 자유문인회협상, 2006년 만해문학상, 2011년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수상했고, 1996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1년 9월 28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