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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낙봉 시인 / 이낙봉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26.

이낙봉 시인 / 이낙봉

 

 

서해안이 폭설입니다, 충북 내륙이 폭설입니다, 서울 경기도에도 강풍을 동반한 폭설입니다, 파도가 높고 개가 뜁니다,

 

지나치게 단단하고 빛나는 날개가 몸통으로 보이는 딱정벌레를 생각합니다, 동시에 지나치게 부드럽고 화려한 날개로 몸통을 가린 나비를 생각합니다,

 

시라고 쓰다보면, 아니 글을 쓴 종이를 구기면 구겨진 종이가 눈입니다, 눈은 풀풀 날리다가 말랑말랑하게 쌓입니다, 눈은 처음처럼 쓸쓸하고 처음처럼 허기에 시달립니다,

 

문자를 보냅니다, 부족하다면 첨부한 사진을 참고하세요, 씹어도 좋습니다, 이곳은 폭설입니다,

 

시집 『폭설』(시와세계, 2011) 중에서

 

 


 

 

이낙봉 시인 / 050730

 

 

1. 처음쓰기

새벽, 주방베란다, 텅빈모래밭, 놀이기구, 중동대로, 자동차, 벌레, 담배,

 

2. 미리쓰기

까치들이 울고 있는 새벽, 주방 베란다에서 내려다 본 놀이터 모래밭 텅 비었다, 미끄럼틀 하나, 그네 셋, 회전기구 하나가 멈추어 있고, 중동대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끊임없이 나뭇가지를 흔든다, 나뭇잎에 붙어사는 벌레가 흔들리고, 나는 담배를 핀다,

 

3. 고쳐쓰기

작은 벌레가 내 잠으로 들어와, 느닷없이 내 얼굴을 갉아먹더니, 비 내리는 중동의 밤을 갉아먹더니, 갈라진 거울 속으로 사라진다, 까치 울음에 놀라 담배를 피우는데 놀이터의 아이들이 모래밭을 파헤친다, 내 얼굴을 갉아먹던 벌레가 아이들의 손을 갉아먹는다, 캄캄한 하늘에서 번개가 천둥이 무너지더니, 모래밭이 텅텅 비고 작은 벌레는 내 머리 속으로 숨는다, 숨이 막히고 뇌 속에서 부화한 벌레들이 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퍼진다,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돌아눕는 나를 덮친다, 하얀방,

 

4. 다시쓰기

하얀방, 내가 거기 머무는 동안 작은 벌레는 갈라진 거울 속으로 사라진다, 벌레를 잡으려던 내 손은 하얀 벽에 부딪혀 피 흘리고, 갈라진 거울 속 바다에서 달이 솟는다, 수평선이 흔들리고 나는 파도와 함께 모래성 쌓기 놀이를 반복한다, 내가 거기 머무는 동안, 하얀방의 갈라진 거울 속의 달에는 개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하고, 나는 모래성 쌓기 놀이를 하며 술을 마신다, 밤새도록 토하면서 마신다, 벌레가 온 몸을 갉아먹는 하얀방,

 

5. 되받아쓰기

내가 거기 머물 때, 나는 모래밭에서 벌레와 함께 개 그림자밟기 놀이를 한다, (그때임신한여자들이줄지어내옆을스쳐간다똑같은종이가방을들고하나같이나를쳐다보지않고스쳐간다,여자들의볼록한배크기는서로조금씩다르지만옆얼굴에핀꽃모양과색깔은모두같다) 내가 거기 머물 때, 꿀이 철철 넘치는 꽃이 지루하게 피고 지고 나비들이 모여들고, 나는 모래밭에서 벌레와 함께 개 그림자밟기 놀이를 반복한다,

 

6. 또쓰기

………………………………………………………………………………………………………………………………………………………………고등 詐欺*?, 事記? 私記?

 

* 백남준의 ‘예술이란 고등 사기’에서 차용

 

시집 『미안해 서정아』(북인, 2007) 중에서

 

 


 

이낙봉 시인

1956년 춘천에서 출생. 198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내 아랫도리를 환히 밝히는 달』, 『돌 속의 바다』, 『다시 하얀 방』, 『미안해 서정아』, 『폭설』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