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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나 시인 / 제비 노정기 ― 춤추는 풍선 인형
원더걸스의 노래 난 너무 예뻐요 운율은 재미 있어요 흥이 절로 나지요 화로 숯불 갈비집 개업식 날 리듬에 맞춰 아침부터 쌔앵 날아 올랐어요
에스오일 역삼점에는 에헤야 리듬을 타는 붙임새로 다녀왔어요 휘모리 중모리 장단에 맞춰 어깨춤 추며 난 너무 예뻐요 박씨를 물고 날아 올랐어요
칸타타 커피 전문점을 향하던 어제 하늘 보셨어요? 붉은 행간에 블라디미르 호르비츠의 음악이 연주되고 푸른빛으로 환호하던 청중들 구름떼로 일어서던 곳
그곳을 지나던 나의 날개 흠뻑 심취하여 난 너무 예뻤어요 물고 있던 박씨 하마터면 놓칠 뻔 했어요
허리를 숙이고 팔을 들어 올려서 머리를 옆으로 제치는 듯 다시 원형으로 돌아가 깊숙이 박씨를 건져 올리는 손
난 너무 예뻐요 박녹주 명창의 사설 가락에 텅텅 하늘을 박차며 퓨전식으로
난 너무 예뻐요 빵빵하게 바람을 채우고 사방팔방 흥부가 새로 문을 여는 상점마다
허리를 굽혔다 올렸다 돌리고 고개를 감았다 풀었다 늘리고 가슴을 찡긋! 윙크하는 난 너무 예뻐요
온 몸으로 박씨를 물고 가는
시집 『E입국장, 12번 출구』(현대시학, 2015) 중에서
정민나 시인 / 장거리 전화
오늘 승선권을 예매한 여자가 커다란 풍차 선착장으로 내려갈 것입니다 그곳은 통영A—거제 앞바다 수용소로 연결되는 길목이구요
그곳에 도착하기 전 이미 포로들의 막사 포로들의 아궁이 포로들의 빨래를 걸어놓은 철조망을 통과하여 여자는 어둠 속에서 파도치고 있어 강력한 반격과 공세에 밀려 투항 생포 되는 통영 부두에
불빛 한 척으로 정박해 있어요 올 겨울은 너무 추워 남해 바다 양식어들이 모두 얼어 죽고 있다는데 세상은 다시 또 거대한 학익진법을 펼쳐야 하나 아무리 쏴 죽여도 밀려오는 적군을 앞에 두고
여자는 오늘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사량도 앞 바다에 서 있습니다 너의 전술은 단순하고 성급했노라 파도치는 등대까지 걸어 나가
뱃고동으로 울고 있는 별들이지만 항구로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바람과 어둠뿐인 여자는 둘둘 말린 담요
바람 드는 내부에 가마니를 댄 채 수용소 막사에 가만히 등을 기댑니다 본국의 집요한 귀환을 거스르며……
풍차가 회전하는 반경 내로 어떤 날개도 만지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며 찰칵! 추운 얼굴을 날개 위에 걸어놓고
산양일주로를 빠져 나갑니다 전선을 사수하기 위해 통영A—거제 앞바다 그녀는 안개 마을에 떠오르는 저 달입니다 끊지 마세요
시집 『E입국장, 12번 출구』(현대시학, 201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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